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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Sep 20. 2023

 A Man Called OTTO

자살을 시도하려고 밧줄을 당기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전기와 전화, 가스까지 모두 해지를 하며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오토.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마을 순찰을 하고 시설물은 고장 난 곳 없는지 살피는 오토는 원리 원칙을 중시하며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까칠하지만 남한테 나쁜 짓은 저지르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돕는 것에 적극적이다. 이웃들은 그를 괴팍한 꼰대 할아버지 정도로 알지만 사실 그의 성격이나 행동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큰 상처 때문이었다. 이런 오토를 이해했던 유일한 한 사람이 그의 아내였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생을 마감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것도 이웃을 돕는 것에 적극적인 그의 오지랖 때문이다. 매사에 날카롭고 원칙주의자인 이런 그가 아이들을 대할 때는 미소를 잃은 적이 없다. 버려진 고양이에 대한 그의 마음을 보았을 때는 사랑하면서도 잘 표현 못하는 ‘츤데레’ 같은 그의 서툰 마음이 느껴졌었다.


'오토라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남편을 생각했다.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아있었다.    

  

남편은 은퇴가 다가오고 있고, 날아다닐 것 같던 체력도 이제 갱년기 진행 중이라 일어서고 앉을 때마다 곡소리를 낼 때도 있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 가운데 우리는 함께 서 있다. 혼자라면 힘들 수 있는 시간을 서로 지켜보며 때로는 농담으로 때로는 조언으로 상황에 대처한다. 가끔 거리 두기를 하고 싶다가도 이제는 안쓰러워 더 챙기게 된다. 옛 어르신들의 ‘열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아이들이 자라서 제 길을 찾아가니 ‘부부 사이가 좋아야 인생의 가을 겨울이 행복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빠른 길을 검색해서 최단 시간에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남편에겐 중요했다. 반면 나는 계절마다 피는 꽃들도 보고 싶고, 눈이 잠시 머무는 곳에 멈춰서 그곳 공기라도 느껴보고 싶다. 아이들의 사춘기는 엄마인 나에게는 함께 건너 주고 싶은 힘든 시기였지만 아빠인 그에게는 누구나 겪는 일이라 큰일이 아니다. 가끔 사춘기 아이들에게 미주알고주알 관심주는 나를 나무랐다. 남편은 무관심하게 내 버려두는 것이 아이들이 스스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단다. 우리는 이렇게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이렇게 다름이 그때는 참 서운하게 느껴졌었다.       


남편을 이해하고 나니 그의 묵묵함 뒤에도 깊은 사랑이 자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단순함 속에도 삶의 지혜가 있음을 깨닫는다. 고속도로로 달려 일찍 도착한 목적지에선 여유 있게 좋은 카페라도 들러 같이 차 한잔 하면 그 또한 좋은 추억이 될 테고, 기다림으로 아이를 함께 바라보며 한없는 인내도 배우게 되었다.


남편사용설명서를 잘 숙지해야 오해나 큰 사고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물론 나에게 남편 사용설명서가 있듯이 남편에게도 나를 대하는 ‘비상 대책법’이 있을 것이다.^^


친구 부부와 모처럼 주말 약속이 생겼다. 선선해지는 날씨에 자켓을 꺼내어 모처럼 멋을 내본다. 단추를 살짝 풀고 안에 입은 하늘색 셔츠를 보이게 한다. 어느새 다가와 남편은 단추를 채워주며 환절기에 감기 걸리니 단단히 여며 입으라고 한다. 멋은 어느새 달아나고 그렇게 중무장을 하고 외출을 한다. 오늘도 남편사용설명서는 두꺼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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