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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Sep 23. 2023

 아버님, 나의 아버님

다섯째 중에 넷째로 태어났지만 막내딸같이 자란 내가 맏며느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도 몰랐다. 친정엄마는 얘가 과연 맏며느리 노릇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다. 우리 세대에 결혼을 하면 덤으로 따라왔던 우스갯소리의 종합선물 세트, 시댁 패키지. 운이 좋아서 내게는 그런 시집살이는 없었지만 문화적 충격은 컸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했다.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아들만 내리 둘을 낳으신 아버님은 나를 딸처럼 대해주셨지만 그래도 내게는 한없이 조심스러운 시어른이셨다. 맏며느리로 집안 대소사는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자 하였으나 많이 부족했을 터인데 한 번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결혼하고 첫 해 추석. 시동생이 먼저 결혼했었기에 손아랫동서와 전을 부치고 있었다.  


‘형님, 저희 친정은 이런 명절에는 일하시는 이모님 두 분이 더 오셔서 같이 준비하는데 저희 시댁은 너무 힘들어요. 결혼하기 전엔 형님, 저 시슬리 영양 크림 썼거든요, 근데, 지금은 백화점 가서 받은 샘플 쓰고 있어요. 아휴, 공무원 월급 이렇게 박한 줄 알았으면 저 결혼하지 말걸 그랬나 봐요.’     


부잣집 딸로 자란 아래 동서가 형님이랍시고 나를 앉혀놓고 결혼생활을 원망한다. 결혼하고 달라진 인생이 어디 한둘이랴. 같은 여자로서 이해해 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싶어 우리는 사이좋게 앉아 김 씨 집안 남자들 이야기부터 온갖 얘기들을 버무리며 전을 굽고 있었다. 어느새 시아버지가 옆으로 다가와서 가만히 지켜보시더니,   

   

‘전의 모양이 바르지 않다.’, ‘산적모양을 잘 다듬어 가며 구워야 한다.’

라며 가르치셨다.


 꼼꼼하신 성격 탓에 첫 명절을 호되게 나고 있는 초보 며느리들이 영 마뜩잖으셨나 보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겪어보시더니,   

  

‘살아있는 사람이 중허지, 돌아가신 분들이 뭐 알아준다고, 앞으로는 제사 음식도 다 좋은 데서 그냥 주문해라.’      


철없는 두 며느리는 그렇게 ‘전 굽기’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러다 또 몇 해 지나 집안의 차례와 제사를 간소화하셨고, 일 년에 네 번 치르던 제사도 어머니 기제사만 남기고 명절에는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바꾸셨다. 변화하는 세상을 읽으시고 아버님은 우리와도 진심으로 소통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카톡, 카톡~     


지난 봄날, 아침부터 핸드폰의 카톡 알람이 시끄럽다. 누가 이렇게 카톡을 보내나 했더니, 아흔세 살 우리 시아버지셨다.

    

‘며늘아기야, 양재동 갈 일 있으면 꽃씨 좀 사서 보내라.’    

 

화초 키우기에 잔뜩 재미를 붙이셨다. 핸드폰은 신상을 쓰시고 새로운 기능을 숙지하신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요즘은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에 푹 빠지셨다. 카톡과 인터넷 쇼핑하는 법 아버님의 배움은 끝이 없다. 브런치도 배우셔서 혹여 내 글을 읽고 계실까 살짝 염려된다.(^^)


작은 아이가 대학 진학했을 때는 축하한다며 입학금을 인터넷뱅킹으로 보내 주셨던 적이 있다. 금융인증서 때문에 아버님은 새벽까지 컴퓨터랑 씨름하시다가 결국 인증서 깔고 직접 손주 입학금을 내주시고는 뿌듯해하셨다. 이런 아버님은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배움에 주저함이 없으시니, 늘 본받게 되어 아버님과의 거리는 살아가면서 더 가까워진다. 질문이 엄청 많으신 우리 아버님, 꼭 아들한테 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카톡 하신다.   

   

‘아가, 네이버에서 스마일페이 가입하면 할인 많이 된다는 데 장점이 뭔지 정리해서 카톡으로 보내주면 좋겠다^^.’ 


웃는 스마일 표정(^^)도 꼭 붙이신다. 귀찮을 때도 있지만 아버님과의 거리는 지금이 딱 좋기에 기쁜 마음으로 해드린다. 아버님을 위해 스마일페이 공부해서 알려드려야 한다.      


며칠 전 아버님이 몇 장의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지난봄에 사드린 꽃씨가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예쁜 꽃 사진을 선물이라며 보내셨다. 카톡에서 묶음 사진으로 짠하고 보내신 우리 아버님,      


'아버님과 나, 우린 예쁜 봄꽃 사진 카톡으로 공유하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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