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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Sep 25. 2023

외갓집의 그녀들

여덟 명의 여인들이 웃고 있다. 단아하게 한복을 입은 여자들 한가운데 유일한 남자가 눈에 띈다. 감색 양복을 차려입고 이 대 팔 가르마에 이마가 훤한 게 귀하게 잘 자란 티가 난다.


거실 한쪽 벽에 걸린 액자 사진 속에 서로 닮은 이모들과 외삼촌이 어깨를 비스듬히 대고 서 있다. 큰 이모 환갑 때 다 같이 모여 찍은 엄마의 형제 사진이다. 어릴 적 외갓집에 갔을 때 할머니 방 벽에 흑백사진이 걸려있었던 것처럼. 엄마는 나란히 선 줄 세 번째에서 웃고 있다.  

   

 엄마의 형제는 1남 9녀. 그중 어릴 때 한 분은 돌아가셔서 1남 8녀이다. 아들을 낳지 못한 할머니는 남아선호사상에 답이라도 하듯 외삼촌을 낳을 때까지 낳으셨고, 그 후로도 그놈의 아들 한 명만 더, 한 명만 더 하시다가 내리 이모들을 두 명이나 더 낳으셨다.     


초등학교 시절엔 이모가 많아서 누가 맏이고 막낸지 순서도 잘 알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다섯째 이모를 낳으실 때 이제 딸로는 제발 마지막이라는 바람으로 ‘막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막점이 이모는 두고두고 이 이름을 원망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이모들의 이름에는 ‘금’이며 ‘은’, ‘옥’ 같은 귀한 글자들을 넣어 주셨는데 다섯째 이모 이름만 ‘막점’이기 때문이다.


 ‘막순’ 이도 있고 ‘말자’도 있는데 왜 하필 ‘점’에다가 ‘막’을 붙였냐고 많이 우셨다고 한다. 그러나 막점 이모의 이름 덕분인지 할머니는 그렇게 원하던 귀한 아들을 결국 낳으셨다.

     

 이모들이 시집을 가니, 외할머니는 딸들이 자신을 닮아 아들을 못 낳을까 전전긍긍하셨다고 했다. 셋째 딸인 우리 엄마가 딸들 중에서는 시집가서 처음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의 큰 오빠이다. 외가댁에서는 경사가 났다며 큰 동네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아들 못 낳아 평생을 마음고생을 하며 애 낳느라고 인생을 보내셨는데, 딸이 시집가서 한 번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버렸으니 외할머니의 기쁨이 얼마나 크셨을까.


 이모들은 큰오빠를 필두로 꾸준히 아들을 낳았고 오히려 딸을 못 낳아서, 나와 언니는 귀염을 받으며 자랐다. 그중에 막점 이모는 이름 때문인지 아들만 넷을 내리 낳았다. 첫째부터 옥춘, 태춘, 행춘 그리고 이제 아들은 제발 끝이었으면 하고 ‘끝춘’이라고 넷째 이름을 지었다. 본인이 이름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받았으면서도 이름에 대한 미신을 믿으셨던 게 확실한 것 같다. 사촌인 우리도 이름으로 끝춘이를 많이 놀렸다. 이후 개명을 했는데 만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강 탑’이라는 이름이었다. 막점 이모는 바라던 딸은 못 낳으셨지만, 막내 끝춘이는 딸처럼 그렇게 곱게 키우셨다. 가끔 방학 때마다 놀러 가면 나를 데리고 인형 놀이하듯 예쁘게 꾸며주시며 귀여워해 주셨던 막점 이모, 나는 이유 없이 그냥 우리 이모들이 참 좋았다.     


몇 해 전 여름, 부산 해운대 콘도를 빌려 외사촌 모임이 있었다. 1남 8녀의 유별난 이모들과 외삼촌, 한 가정당 네, 다섯 명의 자녀들을 낳았으니 족히 43명의 외사촌이 모인 것이다. 지금의 저출산율을 고려하면 얼마나 대가족인지. 게다가 외사촌들 모두 결혼을 해서 배우자까지 하니 43 곱하기 2는 86명. 거기에 기본 두 명씩 자녀를 출산했다. 물론 세 명을 낳은 사람도 있어 백 오십 명 가까운 외가 식구들로 해운대 빌린 콘도가 들썩일 정도였다.     


지금은 sns로 모든 소식을 알 수 있으니 외갓집 밴드에서 각종 대소사며 이런저런 소식들을 접한다. 우리 사회에 학연 지연 혈연의 관계가 지양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에게 이 혈육들이 없었다면 인생의 희로애락의 파도를 어찌 넘어왔을까. 태어나 처음 사회생활을 맺는 곳이 가정이라는데, 나는 유년 시절 이토록 시끌벅적하면서 다사다난하지만, 무언가 안정된 외갓집 문화에 힘입어 사회생활의 기본을 잘 배울 수 있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은 모두 이 외사촌들과의 추억이었다. 방학이면 어느 이모집으로 놀러 갈까? 탐구생활 책 한 권을 들고 이모집에 가면 방학 숙제는 거뜬히 했고, 사촌 오빠들이 매미도 잡아주고, 용두산 공원에도 데려가 주고, 진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해 주었다. 명절이면 늘 복닥 복닥 해서 나는 대한민국 모든 가정들이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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