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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Oct 11. 2023

가 보지 않은 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
.
.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by 로버트 프로스트


살면서 우리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옳든 혹은 그른 선택이었든, 우리는 그 선택으로 지금의 내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때로 결과를 두고 지난 선택을 후회하기지만 두 번째 스물다섯이 되고 보니 내 인생에 가장 큰 선택은 결혼이었다.


2. 골드미스 내 친구, K         

 

‘지금 남편이랑 결혼을 안 하고 만약 혼자 살았더라면, 더 멋진 독신주의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가끔 이런 일어나지 않을 상상을 한다.     


지금이야 비혼주의자들도 많고 ‘나 혼자 산다’족들도 많지만 우리 세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혼자 사는 내 예쁜 친구가 있다. 요즘의 그 흔한 성형 미인 말고, 진정 자연산으로 예쁜 내 친구 K. 게다가 골드미스다. 그냥 미스인 것도 부러운데, 복도 많은 K는 골드미스인 것이다.   

   

나는 왜 그녀가 좋은 걸까? 아마도 착한 그녀의 성품도 있겠지만 나와는 다른 길을 택하여 멋진 독신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누군가를 위한 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고, 하루를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는 삶...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릴 적엔 몰랐는데, K의 집은 당시 건물주이었던 걸로 보아 상당한 부자였고, 우리 집은 가난했다. K에게는 언니가 셋이나 있었고 잘 생긴 오빠와 남동생, 우리 집만큼이나 대식구였다.


언니들이 많은 탓에 옷을 물려받아서였는지 K는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옷차림을 즐겨했다. 긴 카다마이를 입고, 긴치마를 즐겨 입는 K가 가끔은 진짜 객지에서 일하는 언니처럼 보였다.


 K는 말수가 많이 없고 조용했는데 나는 그런 K가 좋았다. 우리 집은 비슷비슷한 나이의 형제들이 사느라 정신없었지만, K의 집에 가면 늘 정갈하고, 나이 차이가 나는 언니들은 객지로 나가 있어 조용했다. 엄마는 K의 성품이 바르다며 K네 집에서 잔다고 하면 외박을 허락하였다.     

 

 K의 방에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같이 듣곤 했다.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몇 있는데 우리는 우르르 몰려 어울려 다니며 공부도 하고, 소녀들이 나눌 수 있는 수다를 떨고, 남중학교 누구누구를 이야기하며 그 시절을 공유했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밤이 되어도 같이 어깨 나란히 걸을 수 있는 K로 인해 나는 당시의 밤길이 무섭지 않았다.      


내가 진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K는 남해에 남게 되면서 우리는 첫 이별을 하였다. 나는 나대로 K는 K대로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내가 결혼을 할 때, 또 중간에 몇 번 만났다. 결혼하면서 나는 부모님을 뵙는 일 외에는 남해에 갈 일이 그닥 없었다. 남해에 가도 아픈 엄마 옆을 지키느라 친구들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K는 유년 시절 함께 한 친구로 그렇게 가슴 한 켠에 남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갔다. K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오십 대가 되니 문득 그 시절과 함께 했던 K가 그리워졌다. 오랜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오십이 되어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동안의 세월이 무색하게 예전처럼 좋았다.     


서로가 선택한 다른 길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나는 K가 겪어보지 못한 시댁과 한 남자를 아주 징하게 사랑하며 겪었고, 아이들을 통해 내 안의 이기심과 교만을 내려놓으며 겸손과 희생을 배웠다.


그녀는 서울의 바쁜 거리를 출. 퇴근하면서 돈을 벌고, 성취는 있었겠으나 조금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독신이 주는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K는 어릴 적 심성 그대로 반듯해서 큰 사고(?) 한 번 안치고 조신하게 잘 살고 있었다.


이번 여름 우리는 둘이서 제주도 여행을 했다. 3박 4일을 함께 한 밤, K가 들려준 그녀의 연애사는 흔한 19금도 아니었고, 막장드라마적 요소도 없는, 가슴 절절한 로미오 줄리엣 러브스토리는 더더욱 없었다. 재미없었지만 나는 끝까지 K의 이야기를 밤을 새우며 경청했다.  어쩌면 그녀와 내가 중학교 시절 이후 건너뛰어 버린 빈 공백을 메꾸기라도 하듯 진지하게.

    

두 번째 스물다섯으로 리셑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는 이 아줌마에게 K는 그냥 가만있어도 푸릇푸릇해 보였다. 아이 둘을 낳은 나와, 여전히 멋진 K. 같은 나이지만 이렇게 비교하면 반칙인 것이다. 한 직장에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K가 내 친구인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는 건대 앞이나 성수동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고 커피를 마시며, 가끔은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한다. 무슨 얘기를 해도 흉 잡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중학교 그 시절처럼 우리는 수다를 떨고, 작은 일에도 꺄르륵 웃어대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참 생각 없이 행복했었고, 지금의 우리는 무슨 일에도 여유가 있고 살아 온 인생의 고개고개 사연들이 있어  멋있고 그래서 행복하다.  


오십 대 내 나이에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나를 있는 그대로 다 보듬어주는 세상에 이런 친구가 하나쯤 있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리고 이제 우리는 공평하게 같이 늙어갈 것이다. 그녀의 눈가에 나와 같은 주름이 있는 게 위안이 된다.

  

내가 못 가본 길에 서 있는 내 친구 K. 어쩌면 가끔은 그녀를 보며 나는 대리만족을 하는지도. 내가 그러하듯 그녀도 가끔은 내가 부러울까. 그러길 바란다. 각자가 선택한 다른 삶을 살지만 서로가 공유될 수 있음이 감사한 친구 K. 너 지금 이 글 읽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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