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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slobster May 20. 2021

영화 <윈터 슬립>을 보았어

아무 일 없이 여행지에 머무는 것처럼






<영화 ‘윈터 슬립’을 보았어> 터키 친구가 추천한 누리 빌제 세일란 감독의 아름다운 터키 영화 한 편을 보았는데, 내 감상평은 다음과 같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영화여서 좋았어. 세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내내 무엇보다 나의 두 눈이 행복했고 마음은 아무 일 없이 여행지에 머무는 것처럼 편안했어.      


호텔의 이름이 '오셀로'여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는 건 금방 눈치챌 수 있었어. 눈에 갇힌 작은 마을이 연극 세트 같았고, 등장인물 간의 대사로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그랬고,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이 전직 연극배우에, 현재 연극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나는 그 연극적인 뭔가가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불행한 사람들은, 어린 소년조차,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야. 그 생각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 경제적이거나, 관계적인 문제로 삶의 주도권을 잃어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삶을 이끌 수 없으니까. 영화 속에서 행복한 건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는 운전기사뿐이고, 그만이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 그가 늘 운전대를 쥐고 있다는 건 그래서 의미 있어 보여. 하지만 누구도 그 남자처럼 되고 싶지도 않고, 되기도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문제의 해결 방법이 되지는 못하지. 


영화가 찾은 해결 방법은 이 영화의 제목인 ‘겨울잠’인 것 같다. 야생의 동물들이 긴 겨울을 지나가는 방법으로 겨울잠을 자듯, 자기 삶의 주도권이 절대적으로 자기 바깥에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스스로의 생각이 현실과 크게 부딪치는 경험을 하면서, 그 한계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영화가 끝이 났어. 그러니까 이 영화는 겨울잠에 막 드는 단계에서 끝이 난 셈이야.  영화 속 그들도, 영화 밖의 우리 모두에게도 이 겨울이 빨리 지나가, 따뜻한 봄날이 오기를!     


그나저나 영화로 만난, 내 친구의 조국 터키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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