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처라도 원인에 따라 아픔이 천지차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제일 아프고,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에게서 받은 상처가 더욱 아프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처의 원인을 기왕이면 다른 이유,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 오진으로 회복이 늦더라도, 당장은 덜 아프기 때문이다.
한 젊은 시인이 있다. 여자친구와 긴 연애 중이고, 변호사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중이다. 자동차는 정말 오래된 구형이지만 그는 그 차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운행하는 데 문제도 없기 때문에 차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 나는 상처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기노'에서>
그는 여자친구 가족과의 첫 만남에서 상처를 받는다. 특별히 그녀의 가족들이 무례했던 건 아니다. 남자의 미래가 불투명했고 현실 인식도, 심지어 시인으로서의 재능조차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변호사인 아버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건 (이유는 모르지만) 그에게 가장 큰 모욕이다.
여자친구의 가족들은 결코 그에게 무례하지 않았다. 영화의 관객은 그들의 첫 만남을 처음부터 쭉 지켜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객관적이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미래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고,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꿈만 꾸는 그가 무례해 보인다.
경험상 이런 게 가장 아프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여러모로 내 잘못 같기 때문이다. 너무 아프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조건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싶은 게 본능이지만(실제 저녁식사 반주에 취한 그도 그랬다), 술에서 깬 후 그의 행동은 달랐다. 여자친구에게 전날의 실수를 진심으로 사과하고, 더욱더 커진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전날 술에 취해 자신의 가족들에게 큰 실수를 범한 순간 여자친구가 그에게 보인 태도("사랑해! 정신 차려!")만큼이나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장면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이 장면에 이를 때까지, 감정을 이입할 등장인물을 결정하지 못하던 관객들이 이 순간에서야 비로소 그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지금까지의 사건을 그의 입장에서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제목이 던지는 질문의 상대방이 '그'라는 것이 확정된다.
이 영화의 제목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에서 <그 자연>은 사람과 사람들이 모여 만든 생태계쯤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그는 (그렇게 아프다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은 게 아니라, (소통과 적응의 대상인) 자연에게서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가 새벽에 혼자 달을 보러 나갔다가 어두운 산에서 굴러 팔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장면은, '그 자연'인 사람에게서 그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표현해 주는 장치다. 은유, 즉 시인의 세계인 것이다.
기성 시인인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처음 그의 시를 듣고, 남편에게 기술적으로 많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지만, 그녀가 아직 보지 못한 게 있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미래이다.
한 시간 반 남짓한 이 영화에서 1, 2, 3, 4, 5, 6, 7. 장 구분이 계속되는 데 이런 장치는 장편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홍상수 감독은 이 영화에서 한 시인이 주인공인 장편소설의 도입부만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는 전날 다친 팔을 치료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 길에 마침내(?) 고장 난 차 안에서 견인 차량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제 차는 팔아야겠다." 혼잣말이 '그 자연이 지금껏 그에게 한 말'을 그가 흘려듣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자연과 다투는 대신 자연에게서 받는 혜택을 선택한 것이다. 그가 늘 찾고 있는 아름다움, 상처를 입더라도 시인이 꼭 만나야 하는 새벽달처럼 빛나는 '사랑'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