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때 PX 사수가 되었다.

PX병; 피돌이 이야기 #1

by 그래

운전병 할래? PX병 할래?

나는 운전병으로 지원해서 수송교육연대(야수교)에서 대형 운전병 교육까지 마치고 자대 배정을 받았다.

신병의 입장으로 행정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신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선임들이 행정반에 기웃거리며 신병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중에는 똘똘한 부사수를 찾는 선임도 있다.


‘신병이야? 운전병? 운전 잘해? (못하면 정비시킬 거야)’


‘대형 운전병이라며? 버스 운전병 할래? 개꿀이야.’


오, 들어봤다.

운전병이 되면 선택받은 자만이 운전하는 운전석이 있다.

사복을 입고 세단을 모는 투스타 운전병

각 부대의 대대장 등의 차를 운행하는 1호차 운전병

운전 실력을 인정받은 버스 운전병

전투에만 필요한 차량을 배정받으면 평소에는 해당 차량의 정비를 주야장천 하다가 훈련 때나 운행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밖으로 외출이 잦은 차량 보직을 모두들 선호한다. 우리 부대에서는 그런 차량이 1호차 CP 운전병, 앰뷸런스 운전병, 버스 운전병이었다.


행정보급관(이하 행보관)님이 들어오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신다.


‘입대가 많이 늦었네? 나이가 많으니까 돈 문제는 없겠다.’


무슨 소리지.. 아르바이트하다가 늦게 입대했고 좀 짠내 나게 살긴 했지만 가뜩이나 졸아있는 신병에게 돈 얘기까지 한단 말이야?

PX병 할래? 운전병 할래?


동기들이 21살에 보통 입대했다면 난 24살이었기에 3년 이상 입대가 늦었다. 앞으로 1년 6개월은 함께 해야 하기에 눈치껏 대답했다.


‘시켜주시면 어떤 보직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짜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된다 골라봐라’


부대 PX병이 돈 문제가 있어서 잘렸다고 한다. 그래서 PX병 두 자리 중 한자리가 공석인데 다른 병사들보다 나이도 많고 아르바이트도 오래 했으니 이등병이지만 PX병을 잘 해낼 것 같다는 행보관님의 의견이었다. 이미 나를 PX병으로 시킬 생각이셨던 것 같다.


사실 속으로는 PX병이 후보군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하고 싶었다.

입대 전에도 숱하게 들려오던 썰들의 주인공인 PX병. 백이 있어야 갈 수 있다는 둥, PX병 자리는 돈 주고 사야 한다는 둥의 유니콘 이야기 같은 전설을 들어봤기 때문이다.

PX병으로 군생활을 한다면 도살장에 끌려가듯 왔지만 편하고 재미있게 군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다.


자대 배치 3일 차, 대형 버스 운전병 상병님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PX로 출근했다.



이등병, PX 사수가 되다.

그렇게 3개월 정도 되었을까. 유난히도 더웠던 7월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부대 곳곳이 무너져 내렸다.

전 병력이 부대 보수공사에 투입되어야 했고 6개월 정도 공사를 해야 원상복구가 될 정도의 피해 규모였다.


우리 부대 PX병은 일과 시간에도 PX를 개방한다.

다른 부대의 PX는 일과시간 이후, 주말에만 개방을 하는 곳들도 있었지만 문제가 많았던 PX였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일과시간에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담당관님의 적극적인 대대장님 설득의 결실이었다.


그래서 모든 병력이 부대 보수공사에 투입되고 우리는 PX에서 공사 인원들의 간식의 원활한 보급을 위해서 에어컨이 켜진 PX를 다소 편하게 지키고 있었다.

행운인지, 부대의 대부분이 산사태 피해가 있었지만 입구 경사로 중턱에 위치했던 우리의 가게는 전혀 피해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PX 내에 취식할 수 있는 공간이 붙어 있고, 그곳에 TV도 있다.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이 TV에서 인기가요도, 드라마 재방송도 틀어져 있는 병사들의 휴식 공간이다.


부대 보수공사가 지속되던 어느 더운 날


사수가 정말 심심했는지 안 하던 짓을 한다. 평소 날렵한 에이스는 아니어도 무뚝뚝하지만 따뜻하면서 어느 정도 눈치는 있는 상병이었다. 근데 왜 그랬을까?


TV 전원을 켰다.

‘오 동물의 왕국 하네ㅋㅋ’


이등병이었던 나는 사수의 눈치도 봐야 했기에 TV앞이 아닌 계산대에 서서 멀리 동물의 왕국을 보긴 했다.

그렇게 3분이나 지났을까?


거짓말 같이 대대장님이 PX에 처음 오셨다. 난 입구도 보이는 자리였기에 경례를 했다.


“충!!! 성!!!”

‘당장 TV 꺼. 지금 밖에서 병사들이 뭐 하고 있는지 모르나? 자네 이름이 뭔가?’

‘상병 김예초. 죄송합니다’


다음날부터 김예초 상병은 부대 보수공사에 투입되었다.


당시 상꺾정도였던 김예초 상병은 남은 군생활을 예초병, 보일러병으로 보내다 전역했다.

*상병 6개월 중 3개월이 지나 꺾이면 상꺾 칭호를 얻는다.

3일 짜리였나 영창도 다녀왔던 것 같다.

기구한 김상병. 정말 처음이고 잠깐 TV 보고 PX병에서 잘리고 영창을 갔다.


원래 나도 같이 잘렸어야 했는데. 둘 다 자르면 PX 인수인계 할 사람이 없기도 했겠고,

이등병이라 아무것도 모르니까 한번 봐준 느낌으로 살아남았다.

큰 위기를 넘기고 나니 이등병으로 PX의 사수가 되어 있었다.


이병 피돌이. 내가 이 부대 편의점 사장이 된 거다.


부사수 알파포대 아저씨 여명이형 합류

이등병이 사수인 PX는 이미 위태롭게 보였을 것이다. 빠르게 부사수가 충원됐다.

나는 본부포대 소속이었고, 부사수는 알파포대 일병이었다. 게다가 나보다 두 살 형.


어 이상하다.. PX는 본부포대가 관리하고, 사수는 내가 맞는 것 같은데..


PX가 본부포대가 관리한다는 거 빼고는 짬밥도 안되고, 쌀밥도 안 되는 형국이었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첫날에 바로 알았다. 좀 괴짜긴 해도 좋은 형이었다.


여명이형이 말했다.

‘잘해보자. 어차피 아저씬데 뭐ㅋㅋ’


여명이형에게 군생활동안 밖에서도 못 배운 것들을 정말 많이 배웠다.

보고 싶네 잘 지내나.


다음 이야기.. (https://brunch.co.kr/@yesokay/10)



▶ 전역한 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30대 직장인, 아빠, 남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들을 보시고 공감하신다면 읽는 분에게도 저에게도 힘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