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병; 피돌이 이야기 #2
우여곡절 끝에 PX병으로 보직이 결정되었지만 20대 나이로 21개월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오 젠장. 군대에 있는 시간 정말 길다. 끝나기는 할까?
우리 PX의 규모는 꽤 큰 편에 속했다.
(그 당시에는 말로만 들었지만 나중에 다른 PX에 가볼 기회들이 생겨서 직접 보기도 했다.)
300명 규모의 대대급이기 때문도 있었지만 같은 대대급에서도 진열하는 공간도, 취식 공간도 넓었다. 편의점 중에서도 ‘어 여기는 편의점치고는 크구나’하는 정도의 규모였다.
과자 진열대에는 듬성듬성 과자들이 있고 잘 나가지 않는 과자들은 그 자리에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음료 냉장고는 병사들이 많이 찾는 음료 코카콜라 정도만 신경 써서 채워놓고 나머지는 채울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라면 진열대에는 빈 곳이 많아 뒤죽박죽 여러 가지 라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거 시원한 거 없어요?’
‘ㅇㅇㅇ 없어요?’
‘아 ㅇㅇㅇ 또 없다’
여명이형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여명이형은 만화에서 나오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괴짜라고 생각한 것은 이런 부분이다.
자 시작해 볼까?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며 업무를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며칠 동안은 목장갑을 끼고 진열된 물품들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아.. 저 형 좋은 게 좋은 줄 모르고 명랑하게 되게 열심히 하네. 괜히 나까지 열심히 해야 하잖아..’
속으로 툴툴거리며 옆에서 함께 먼지를 털고 매장을 정리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굴러온 돌 취급하며 퉁명스럽게 대한 적도 있는 것 같다. 꼴사납게 텃세라도 부렸었나 보다.
그러다 1년 넘게 함께 해야 했기에 물어봤다.
“형, 왜 이렇게 까지 해?”
그냥 PX병은 휴식시간이 따로 없으니 일과시간에는 비교적 편하게 지내면서 하루하루 보내면 되는 게 아닌가? 주말에도 일해야 하니까 말이다.
군대의 일과는 ‘기상 → 일과시간 → 개인정비시간 → 취침’이 기본적으로 반복된다.
평소에는 훈련 또는 전투를 위해서 이렇게 지내다가 훈련 기간에 내가 밖에서 상상했던 총을 들고, 방탄모를 쓰고 쏠져가 된다.
군대에서는 일과 시간에 각자의 보직에서 맡은 업무들을 수행하고 오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개인정비 시간을 가진다. 개인정비 시간에는 씻고, 빨래하고, 생활관에서 TV를 보거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PX에서 군것질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달랜다.
거기에 주말에는 하루 종일 개인정비 시간이다.
병사들에겐 개인정비 시간이지만 PX병에게는 집중근무 시간인 것이다.
일과시간도 여명이형처럼 힘들게 해 버리면 ‘기상 → 업무 → 업무 → 취침’이 365일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형, 왜 이렇게 까지 해?”
“ㅋㅋ 재밌잖아”
‘하 이 양반이 진짜..’
여명이 형이 하는 것들을 모두 돕지는 않았다.
내가 함께 하든 말든 형은 아랑곳 않고 먼지를 털어내고, 재고를 파악하고, 창고를 정리했다.
매일 밤, 진열대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특히 주말이 오기 전 불금에는 정말 풀세팅을 해놓고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과자 진열대에는 잘 나가는 과자들로 다양한 종류로 진열대 끝까지 줄을 맞춰 채워져 있었고,
음료 냉장고에는 음료 종류별로 줄을 맞춰 가득 채워 다음날 영업이 끝날 때까지 냉장고가 비워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라면 진열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매장이 바뀌어 가니 병사들이 가장 먼저 느꼈다. 마치 새로 오픈한 백화점에 온 아가씨들 같았다고 할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던 것 같다.
우리 PX에는 한 가지 룰이 있었다.
‘바구니가 있는 사람만 매장에 들어가는 것’인데 매장에는 10여 개 정도의 바구니가 있고 매장 내에 인원을 바구니당 2명 20명 정도로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정한 것은 아니고 물건을 훔쳐가는 병사들도 있었기에 CCTV 확인을 위해서 너무 많은 인원들이 몰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PX가 무질서하게 운영되다 보니 룰이 지켜질 리가 없었던 것이다.
매장 관리에 신경 쓰고 나서는 우리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우리 생활관 선임들도 차례로 줄을 서게 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매장은 점점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기 시작했다.
그 쯤 되어서야 나도 바뀐 것 같다. 부정적인 마인드가 무질서한 PX와 함께 치료된 걸까?
나도 진열대, 냉장고에 물건이 마르지 않게 열심히 채웠다. 주말에는 한 명이 계산하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열심히 진열을 했다.
금요일 밤에는 물건을 다 채우지 않으면 당직사관에게 허락을 구하고 야근을 하기도 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재밌었다.
하지만 여명이형은 더 큰 계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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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역한 지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30대 직장인, 아빠, 남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들을 보시고 공감하신다면 읽는 분에게도 저에게도 힘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