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이 글을 보고 남혐 여성들의 댓글 테러가 달릴지도 모르겠다. 내 주위에는 그런 분들 안 계시니까 뭐)
먼저 이 영화를 본 많은 남성들이 아내와 함께 이 영화 보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일부러 아내와 함께 영화 관람을 했다. 아내의 의견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내가 굳이 이 영화를 본 이유는 가정행복코치로서 오늘날 남혐, 여혐으로 양분되는 시대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갖고 싶어서였다.
소설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이미 360만 명이나 관람(2019. 11. 25 기준)했으니 많이 보긴 했네)
영화가 끝나고 식사를 하며 (내 의견을 먼저 얘기하지 않고) 아내에게 물어봤다.
"어때? 공감이 돼?"
"아니, 전혀 공감 안돼!"
"왜?"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잖아. 아주 극소수의 얘기야"
"그렇지? 나도 공감 잘 안 되더라"
극소수의 얘기라니... 혹시나 내 아내가 36년의 결혼생활이 수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까 봐 사족을 붙인다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누구보다 고난과 시련의 결혼 생활을 경험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고 자랑스러운 훈장이지만...
영화의 대강은 이렇다.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느라 경력 단절녀가 되고 육아 스트레스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힘들어하다 결국 다른 사람으로 빙의 현상을 경험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훌쩍인다.
결혼생활, 육아, 직장맘을 병행한다는 게 힘들다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네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며느리가 있는지라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안다. 그러나 주인공이 26개월짜리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정신병적 빙의 현상을 경험하는 엄마가 얼마나 되겠는가. 애를 둘셋 키운 것도 아니고... 그리고 영화에서는 육아 스트레스를 받는 장면들이 별로 보이지도 않았다.
극 중 아빠 공유도 과거 흔한 아빠 캐릭터인 일중독자에 자기 취미에 빠져 사는 남편이 아니었다. 공감 능력, 배려심, 헌신하는 자세가 놀랍다. 저런 아빠라면 상위 1%쯤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아내가 저런 상황이 된다는 건 전문가적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그 가정의 개인사적 문제다. 영화에 보면 극 중 아버지가 지영에 대해 가진 가부장적 시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딸의 정신병을 초래할 만큼 심한 것인지는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화면의 한계일 수도 있겠으나 개연성은 부족해 보인다.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화장실 몰카라던지, 버스 성추행,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맘충) 등. 물론 이런 것들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범죄행위지만 처음부터 남혐을 부추길 의도가 아니었다면 구태여 그런 것들을 담을 필요가 있었나 싶다.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
"수도 없이 많지. 난 작은 애 업고 기저귀 가방 들고 큰 애 데리고 밖에 나갈 때가 제일 힘들었어. 연말에 택시 타려고 하는데 스무 대도 넘는 빈 택시가 그냥 지나칠 때 그냥 주저앉아 울고 싶더라"
"이웅평이 미그기 몰고 귀순했을 때는 또 어땠고. 그때 당신은 해외 출장 중이었지. 친정 집에 전화도 불통이고, 오도 가도 못하고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옆집에 놀러 갔다가 딸내미가 피아노 위에서 놀다 떨어져 모서리에 뒷머리를 부딪혀 피를 철철 흘리는데 당신은 회사 일로 연락도 안 되고, 큰 애 손 잡아끌고 피투성이 애 안고 택시 타고 병원 갈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
할 말이 없어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57년생 현숙이는 이렇게 살았다.
그런 엄마에게 육아의 달인인 아들이 하는 말
"엄마는 우리 둘을 어떻게 그렇게 키우셨어요? 전 절대로 하나 더 안 낳아요"
그러자 우리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래도 하나는 더 있어야 한다. 제발 하나만 더 낳아라"
저서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
[차라리 혼자 살걸 그랬어] (결혼 분야 스테디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