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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한 수 위다!

12년 만에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두 달 전부터 아내가 집안 정리를 하고 있다. 난 오다가다 지켜보는데 짐 정리 정말 장난 아니다. 12년 동안 한 번도 안 꺼낸 물건도 있단다. 결혼해서 36년 동안 열 번 정도 이사한 것 같다. 이사만 생각하면 나는 아내에게 할 말이 없다. 요즘이야 다들 포장이사지만 과거에는 짐 싸고 풀고 정리하는 게 전부 개인의 몫이었다. 아니 아내 몫이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사실 나는 이사에 참여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한 번은 골프 약속과 겹쳐 나는 골프 치러 가고 아내 혼자 이사한 적도 있다. 그때 그 모습을 본 아들이 지금도 나한테 핀잔을 준다. "아빠는 엄마한테 할 말 없어요. 이사 가는 날 골프 치러 가는 사람이 어딨어요?" 깨갱. 그땐 그랬다.


나는 그런 일을 너무너무 귀찮아한다. 아니 싫어한다. '남자는 큰 일을 해야지, 쪼잔하게 이사 이런 거야 뭐' 이런 생각이었나 보다. 그러니 아내 입장에선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번 이사를 준비하면서 아내가 나한테 맡긴 과제가 딱 하나 있다. 내 서재 정리다. 필요 없는 책을 정리하는 거다. 총 20칸인데 하루에 두 칸씩 정리하겠다고 하니 와이프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참 못마땅할 거다.  


내가 마지 못 해 서재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내 눈총이 따갑다. 뭔가 반전 거리를 찾아야겠다. 아내가 정리가 끝난 분리수거 박스를 문 앞에 갖다 놨는데 세 박스나 된다. 한 번에 처리 못할 양이다. 저녁 먹고 내다 버리려나 보다. 기회다 싶어 저녁 먹자마자 내가 얼른 갖다 버렸다.

그 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내가 말한다.
"고마워요. 아까 당신이 서재 정리를 싫어해 꾸물거리는 게 참 보기 싫었는데, 내 생각해서 저녁 먹고 얼른 분리수거해줘서 고마워요. 당신한테 평생 고마워요"

아내의 감사 표현에 "뭘, 별 것도 아닌데..."라며 짧게 대답했지만 내 마음에는 큰 여운이 남았다. '내일 서재 정리 다 끝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이 여자, 사람 부리는 능력이 참 뛰어나다.
만일 아내가 내 비협조적인 태도에 투정이나 비난을 했다면 내가 어떻게 대응했을까?
아내 말 잘 듣자~

p.s. 대박! 책 정리하다 책갈피 사이 봉투에 든 5만 원 건졌다~~~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 떡 생긴다는 말이 맞는구나~



국가대표 가정행복코치 
이수경 Dream

저서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

        <차라리 혼자 살걸 그랬어> (결혼 분야 스테디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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