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회사가 팔리다

“전무님! 회사가 팔린다는데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거래처에서 들은 얘긴데요. 우리 회사가 팔린대요.”

“그래? 어떤 회사야?”

“잘 모르겠어요. 지방에 있는 자그마한 회사라는데…”

“에이, 그럴 리가 있어? 내가 좀 알아볼게”


(사장실)

똑똑

“사장님! 접니다~”

“그래, 들어오게”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뭔데?”

“우리 회사가 팔린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글쎄 저도 오늘 처음 들었는데... 그런 소문이 있어서 여쭤보는 겁니다”

“그런 일 없어”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이 돌까요?”

“모르지. 누가 헛소문 퍼뜨리나 보지”

“그렇죠? 그런 일 없죠?”

“그래. 그런 일 없어. 자네 나 못 믿어?”

“아유, 무슨 말씀을요. 당연히 믿죠. 혹시 그런 일 있으면 저한테 꼭 얘기해 주십시오”

“당연하지. 그만 나가보게”

“네, 알겠습니다”


그 후에도 그런 소문은 계속 돌았다. 그때마다 신나리 전무는 무대포 사장에게 물었고 무사장은 한사코 부인을 했다. 무사장의 말을 들은 신 전무는 잘못된 소문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두 달쯤 지나 업계에서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 돼 버렸다. 연 매출액 천억짜리 회사를 인수한 회사는 규모가 반에 반도 안 되는 지방의 작은 중소기업이었다.

기가 막혔다. 신전무는 다시 사장실을 찾았다.

“사장님! 이게 뭡니까? 그 소문이 사실이었네요”

“그래, 여차 저차 해서 자네한테 미리 얘기 못 했네. 극비로 진행해야 하는 일이라서. 미안하게 됐네”

“사장님! 이건 아니죠.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데요. 다 망한 회사를 누가 이렇게 살렸는데요”

“ 그래, 자네 공이 컸지, 누가 그걸 모르나”

“ 그런데요, 이러시면 안 되죠”

“어허, 이 사람! 좀 기다려 봐. 찬찬히 설명해 줄게”


그가 다니던 회사는 건축 자재 회사로서는 국내 굴지 기업이었다. 창업한 지 20년이 넘도록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던 회사가 IMF 위기를 맞아 졸지에 부도가 났다. 그 회사에 하청을 주었던 원청 건설회사들이 무더기로 부도가 나면서 연쇄부도를 맞은 것이다. 암울한 시기였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국가부도 위기인데 누구를 탓하고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는가. 살아야 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무사장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10명의 임원 중 8명을 내보내고 신나리 이사만 달랑 남겼다. 직원 숫자도 450 명에서 170 명으로 줄였다. 그때부터 뼈를 깎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장기로 말하면 차, 포 떼고 졸만 데리고 일해야 했다.


1,000억 매출하던 회사가 다음 해 700억 원으로, 이듬해 450억 원까지 떨어졌다. 신 이사는 영업본부장을 맡아서 그 이후 7년 동안 허리띠, 머리띠, 신발끈 조여 매고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는 루틴이 수년간 계속됐다. 전국 5개 지방 사무소를 매주 한 군데씩 돌았다. 어떤 날은 밤 기차 타고 새벽에 서울역에 도착해 집에 와서 눈만 붙인 후 샤워하고 다시 출근한 날도 있었다. 힘들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회사가 부도가 나니 기존에 계약된 공사는 전부 해약되고 신규 공사를 수주할 수 없었다. 망한 회사에 누가 일감을 주겠는가. 국내 공사가 안 되니 해외 공사 수주하러 다니고, 공사 감독하러 2년 동안 여권에 출국 도장이 무려 38번 찍혔다. 천신만고 끝에 7년 만인 2005. 8월 회사 빚 다 갚았다. 다시 1,000억짜리 회사로 만들었다.


위기는 기회다

“위기는 기회다 “라는 말, 틀리지 않았다. 회사가 위기를 맞으니까 10명이던 임원들 두 명으로 줄이고, 450명 직원을 170명으로 줄여도 아무 문제없었다. 오히려 생산성이 3~4배가 뛰었다. 개인적으로도 그가 영업본부장 될 때 이사였는데 3년 만에 상무로, 3년 만에 전무로, 또 2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을 했다. 그 자신도 그랬고, 모든 직원들이 ”저 사람 사장될 거다 “라고 했다. 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탄탄대로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의 항의에 무사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신 전무, 사실은 말이야. 내가 다른 뜻이 있었어. 자네도 알다시피 회사 부도 이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나. 나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이렇게 죽기 살기로 회사를 다시 살렸는데 재도약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걸림돌이 있어. 재도약하려면 투자가 필요한데 지금 오너는 투자할 생각이 없어. 여력도 없고.” 회장이 대주주, 사장은 2대 주주였다. 회사를 재기시키는데 사장과 신전무는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회장은 언제나 그랬듯이 실무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속담처럼. 뭐 그런데 사실은 그게 대주주 역할 아닌가.


무사장이 계속 말했다.

“아무리 회사를 키워도 지금 구조로는 자네나 나나 비전이 없어. 그래서 새로운 투자자를 찾았네. 이번에 투자받아서 회사를 제대로 성장시켜 보세. 투자자가 지방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젊은 친구인데 투자를 받아도 내가 계속해서 대표이사로 경영을 맡을 거니까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을 걸세. 그러니까 자네는 나만 믿고 따라오게. 새 오너가 나를 아버지처럼 따르는 친구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야. 어린 친구가 뭘 알겠나. 그러니 자네는 아무 소리 말고 지금처럼 열심히 일만 하면 되네.”


당시 그 회사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지명도가 높은 회사였기 때문에 원자재를 공급하던 대기업 계열사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직원들 중에는 그런 대기업에 인수 합병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사장은 그렇게 될 경우 대기업에 회사를 뺏길 수도 있다는 염려가 있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지방 중소기업에 팔려 버린 것이다. 고래가 새우에게 먹힌 격이었다.


회사는 당신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렇게 직원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다시 살아난 회사를 사장이 비밀 작전하듯이 회사를 팔아치워 버린 거다. 그 어려운 시기를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이겨낸 직원들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신 전무의 충격이 제일 컸다. 언감생심 사장 자리를 바라보던 그였으니 어땠겠는가. 그런 그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는 월급쟁이의 비애를 그때처럼 뼈저리게 느낀 적이 없었다. 회사는 절대로 당신을 책임지지 않는다.


점령군이 회사에 진군하고, 무사장의 말과 달리 그들이 직접 경영을 하면서 사장과 신 전무를 비롯한 기존 임원들을 팽(烹) 시키는 데는 수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대기업 다니다가 이 회사로 스카우트되어 24년을 다녔다. 월급쟁이 생활 28년, 그 회사에서만 24년을 보냈다. 한 마디로 청춘을 바친 회사였다. 그만큼 애착이 컸다. 그는 6개월 정도 눈칫밥 먹다가 사표를 내고 회사 문을 나서는 날 만감이 교차했다. 햇볕이 유난히 따사로운 오후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창창한 미래가 열릴 줄 알았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 새 오너가 문제였나. 아니다. 그의 입장에서야 거액을 투자했는데 당연히 자기 방식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싶었을 거다. 그거야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다. 무사장의 노욕(老慾)이 문제였다. 그는 잘못된 시나리오를 짠 거다. 잘못된 시나리오는 한 개인은 물론이고 조직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몇 년 후 그는 회사가 회생 절차 개시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잿빛 구름과 뿌연 미세 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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