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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답정너가 아니다

흔히들 미래를 예측 불가하다고 한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한다. 아니다. 미래는 정해져 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내 미래는 정해져 있다. 내가 지금 하는 대로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컴퓨터 용어 중에 ‘GIGO (Garbage In, Garbage Out)’라는 말이 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이다. 향 싼 종이에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 비린내 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뿌린 대로 거둔다. 뿌리지 않았는데 거두기를 바라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로 답을 한다. “어제와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와 같다.” 호된 질책이다. 정신병이란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중기나 말기라 아니라 초기라니.     


만약에 내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10년, 20년, 30년 뒤 내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면... 나는 열심히 살지 않을 것이다. 내 미래가 좋은 미래라면 ‘어떻게 살아도 나는 잘 살게 될 건데 왜 고생을 해?’라는 생각을 할 것이고, 반대로 나쁜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어차피 해도 안 될 건데 내가 뭐 하러 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세상이 살만한 이유는 미래를 모르기 때문이다.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미래는 예측 가능하지 않다. 예측은 자유지만 대부분 틀린 예측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미래는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며 예측 하지만 미래는 예측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미래는 예측해야 한다. 틀릴지라도 예측해야 한다.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예측은 현실이 된다.      


알 수도 없고 불안한 미래, 어떻게 할 것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피터 드러커가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링컨 대통령이 먼저 말했다. 그렇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거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태어난 대로 살지 않는다는 거다. 약한 동물은 평생 강한 동물에 쫓겨 다니다 일찍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어떤 역경도 역전시킬 수 있다.      


현재가 행복한 사람들은 어떨까? 미래도 행복할 것으로 낙관한다. 그래서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미래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잘못될 일만 남았다. 현재가 행복하던 불행하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행복한 사람이 더 행복해질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으며, 불행한 사람이 더 망가질 수도 있고 지금 행복한 사람보다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가 불행해도 나는 살아갈 이유가 생긴다. 신나서 살아갈 수 있다. 내 미래는 내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더 노력했으니 조금 더 나아지기 때문이다. 10년 뒤 나는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10년 뒤 내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 뛰지 않는가.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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