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멀리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세계적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그만큼 현실이 만만치 않음을 나타낸 말이다. 왜 인생을 정의할 때 '한 많은 이 세상'이라고 했겠는가. 좋은 일, 기쁜 일보다 힘든 일, 슬픈 일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런 속담도 있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  살아야 할 이유다. 살아내야 할 이유다. 비록 지금은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먼 훗날 돌이켜보면 ‘내가 이 험난한 길을 잘 헤쳐 나왔구나’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게 잘 살아낸 인생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 만약에 내게 기분 좋은 일, 신나는 일, 행복한 일만 있다면 내 인생 어떻게 될까? 평생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아니다! 아마도 폭싹 망할 것이다. 인간은 교만 덩어리다. 게으른 동물이다. 편하고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힘들고 고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내게 좋은 일만 있다면 내 영혼과 육체는 게으르고 나태해질 것이다. 반면에 적당한 스트레스가 주어지고 내 환경이 힘들 때 나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킨다.      


헬스클럽에 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운동하기로 결심하고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법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안 하던 운동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몇 가지 동작밖에 안 했는데도 다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 힘들어. 죽을 거 같아요.”를 남발한다. 그때 들리는 트레이너의 기가 막힌 한 마디가 그들에게 힘을 내게 한다. “회원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아, 내 몸이 건강해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세요. 이걸 이겨내야 하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튼튼해지고 건강해진다. 그것이 나의 경쟁력이다. 역경은 경력이 되고 나는 그것을 역전시킨다.    

  

100년 가까이 사는 인생이다. 한때 반짝 잘 사는 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잘 살아내야 한다. 내 직업이 가정행복코치이고 또 여기저기 강의 다니고 가끔 방송에도 출연하는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내가 마냥 행복한 삶을 사는 줄 안다. 하긴 SNS에 좋은 모습만 올리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내가 무좀 때문에 고통받는 걸 누가 알겠는가. 내 바지 주머니 속에 뭐가 들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 나는 짧지 않은 인생 살아오면서 좋은 일만 있었을까? 아니다! 나름 크고 작은 위기를 많이 겪었다. 부모님의 불화로 불우했던 청소년 시절, 대학 시험에 떨어져 재수를 하며 첫 시련을 겪은 후 20년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어려움을 겪다가 기사회생한 경험, 초기 결혼 생활 고부갈등으로 인해 아내와 수 없이 다투었던 기억,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 몇 번의 투자 실패로 인한 손실 등등 나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참 우스웠다. 인생은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고 아름다웠다. 그때는 몰랐다. 지나고 보니 비로소 알게 됐다.


짧은 비극을 긴 희극으로 바꾸는 비결이 뭘까? 그것이 바로 ‘인생 시나리오’다. 내가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내 인생 후반전은 달라진다. 내가 비극으로 마치겠다고 하면 내 인생은 비극이 되고, 내가 희극으로 마치겠다고 하면 내 인생은. 희극이 된다. 어떤 시나리오를 쓸 것인가? 비극? 희극? 전, 후반 모두 희극이 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전, 후반 중 어디가 희극이 되면 좋을까? ‘전비후희’가 낫지 않을까  

   

긴 인생, 시나리오를 잘 쓰자. 때로는 가시밭길을 만나기도 하고 비바람을 만나거나 폭염에도 시달리겠지만 먼 훗날 서산에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인생이 되자.     

작가의 이전글 Before 시나리오, After 시나리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