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를 ‘돕는 배필’이라 한다. 그 말은 배우자는 돕는 사람, 즉 배우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가졌고 배우자는 갖지 못한 것을 돕거나 나눠준다는 뜻이다. 부부 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자는 내담자인 부부 각자의 하소연을 듣게 된다. 그럴 때 상담자는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거기에 문제 해결의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배우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배우자는 그것을 이해하기는커녕 그동안 지겹게 들어오던 잔소리로 들을 뿐이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먼저 아내의 입장이다. 돈을 잘 벌어오지 못하는 남편을 둔 아내는 오로지 경제적 능력으로 남편의 유능성을 판단한다. 이런 아내는 늘 남편에게 “딴 건 못 해도 좋으니 제발 돈만 많이 벌어와”라고 말한다. 반면 돈을 잘 벌어오는 남편을 둔 아내는 돈에는 관심이 없고 자상함이나 가사 분담, 자녀 양육 등에 남편의 참여를 요구한다. 첫 번째 아내가 남편이 돈을 잘 벌어오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다른 욕구를 표출한다. 두 번째 아내처럼 경제적 능력 이외의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경제적 욕구는 이미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들이 헷갈리는 것이다. “돈만 많이 벌어오라며? 근데 왜 이제 와서 딴 소리야!”라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자. 외모가 아름다운 아내를 둔 아내는 아내의 경제적 능력이나 내조, 가사/육아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살림이나 요리를 잘 하는 아내를 둔 남편은 그 외의 영역, 즉 지적 능력이나 외모, 몸매에 관심을 보인다.
결핍이 곧 욕구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 한다.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매슬로우는 5단계 욕구 중 하위 4단계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를 ‘결핍 욕구’라고 불렀고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성장 욕구’라고 불렀다. 무슨 말인가. 배우자의 하소연을 잘 들어보면 그것이 곧 배우자의 결핍 욕구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배우자가 하는 하소연을 듣고 그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라. “그러니까 당신이 ...라고 했는데 내가 그걸 채워주면 되겠어?” 그래서 아내가 “맞아요”라고 하면 그것이 아내의 결핍이고 욕구다. 자주 하는 하소연일수록 더 그렇다. 그걸 들어주면 된다. 돈 많이 벌어오라는 하소연 말고 못 들어줄 게 뭐 있겠는가.
내 아내는 나와 30년 이상 같이 살면서 내가 꼬박꼬박 월급은 갖다줬어도 큰 돈 버는 능력이 없는 걸 알기에 돈 벌어오라는 소리는 더 이상 안 한다. 대신 있는 돈 까 먹지만 말라고 한다. 이제는 아내도 연식(?)이 꽤 되고, 게다가 1년 전 다친 무릎이 쉽게 낫지 않아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 살림하기를 힘겨워 해 내게 몇 가지를 요구했다.
- 한달에 두 번 자기와의 데이트 시간을 할애하라 (이름하여 ‘와이프데이’)
- 코로나 이후 저녁 식사를 주로 집에서 하는데 집에서 저녁식사하는 날은 설거지를 도맡아라
- 요리를 전혀 못 하는 나인데 기본 4종 찌개(된장, 김치, 미역국, 청국장) 요리를 숙달(아직 된장찌개 밖에 못 끓임)하고, 토요일 아침 식사는 내가 차린다
- 주 1회 거실 화장실 청소를 한다 (안방 화장실 청소는 아내가 계속 하고)
이렇게 한지 1년이 됐다.
근데 이게 해 보니까 잘 하진 못 해도 은근히 재밌다. 이런 루틴이 자리잡으니 이젠 부부싸움할 일이 없어졌다. 가끔은 싸워야 정도 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