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 두 번째 책 ‘차라리 혼자 살걸 그랬어’를 읽고 감명받았다며 한 독자께서 전화를 주셨다. 듣고 보니 참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30년간 결혼 생활을 같이 해 온 아내가 6개월 전 갑자기 가출을 했고 이후 일체의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다 두 달 후 이혼 소장을 보내왔다. 남편은 짐작조차 못 했던 터라 멘붕에 빠졌다. 곧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아내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아내는 일체의 응답을 거부하고 있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혼 재판에 참석해 판사의 권유로 부부 상담을 각자 받고 있는 중인데 아내는 여전히 남편과의 연락을 거부하고 있단다. 다급해진 남편이 내 책을 사서 읽고 많은 반성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그동안 무의식 중에 아무 의도 없이 한 행동들이 아내에게 상처를 줬고 그것이 부부 사이를 회복할 수 없는 단계로 손상시켰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단다.
남편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일이 있기까지 30여 년의 결혼생활에서 아내가 단 한 번도 부부 사이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놀라웠다. 아무리 순한 사람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표출하는 법이다. 꼭 남편에게 하지 않더라도 자녀들이나 제3자에게 공격적이나 적극적이 아니더라도 수동적 반응이라도 하는 법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부부싸움을 한 적도 없고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한 적도 없다고 한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긍하기 어려웠다. 남편이 둔감한 건지 아니면 정말 아내가 순종적이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오면서 아내는 집콕 생활만 하면서 외부인들과 일체의 만남을 중단했고, 남편에게도 직장을 오가는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이런 사달이 난 거다. 코로나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코로나 이혼 (Corona Divoce)’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는데 이 가정도 그런 예의 하나다.
남편의 하소연을 듣고 나름 판단을 해보았다. 아내에게 남편이 모르는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랜 결혼 생활 동안 쌓인 감정에도 적절히 반응하지 않고 속으로 삭혔을 가능성이 크다. 때맞춰 갱년기가 왔는 데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타인들과의 관계 단절로 인한 감정의 응어리가 한계에 도달하자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평소 대화를 하거나 부부싸움이라도 해서 문제를 다뤄 왔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본인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경제적인 문제나 외도 문제도 아니고 양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고부/장서 갈등도 없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이혼 사유 1위인 성격차이였다면 정상적인 부부라면 수없이 다퉜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적도 없었으니 남편은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그럼에도 남편은 자신의 행태를 반성하고 이혼만은 막고 싶다면서 어찌했으면 좋겠냐고 조언을 요청했다. 원래 상담이라는 게 부부 양쪽의 얘기를 다 들어 봐야 알 수 있는 건데 지금 그럴 상황이 안 되니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조언을 했다. 남편은 “선생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볼게요. 이제야 희망이 좀 보이네요.”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내와 함께 상담을 받는다면 어떻게든 도와줄 텐데 참 안타깝다.
부부들이여! 부정적 감정은 쌓아둬서는 안 된다. 웬만하면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 그대로 두면 괴물로 자라나 어느 날 가정을 집어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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