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명은 ‘친절한 수경씨’다. 내가 친절해서 그런 별명이 붙여진 게 아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내게 호소했다. “당신 제발 나한테 짜증 좀 내지 마”, “당신 제발 나한테 친절해 봐” 처음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동의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짜증 내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당신이 좀 잘해 봐. 그러면 내가 왜 짜증을 내?’ 이런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고 그때마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내 생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내가 아내에게 친절해야겠다고 작심하고 나 스스로 붙인 별명이다.
그 이후 친절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내 불친절한 습관은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았다. 아내가 내 기대에 못 미치거나 불만족스러울 때는 나는 어김없이 짜증을 냈고 그때마다 아내는 상처를 받았다. 40년 결혼 생활 동안 우리 부부 싸움의 주요 원인은 대체로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결혼 10년 차까지 고부갈등이 원인이었고, 그 이후에는 내 짜증 내는 습관과 그것을 견디지 못한 아내의 투쟁의 역사였다. 그런 싸움이 잦아질수록 아내가 이혼을 요구한 적도 있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근래 들어 생각해 보니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싶다.
나 스스로도 짜증 내는 습관이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고치려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짜증 내는 순간 속으로 ‘아, 이게 아닌데… 또 이러네ㅠㅠ’ 하고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장남으로 살아오면서 자리 잡은 고질적인 상전(上典) 의식 때문인지, 오랜 직장 생활 동안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누적 등이 원인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자주 짜증을 냈고 아내는 그때마다 상처를 받았다. 밖에서 과도한 에너지를 쓰고 집에 돌아오니 방전되어 집에서는 손도 까딱 안 하려는 심리 때문에 가족들이 내 수족처럼 움직이기를 원했던 것이지만 누가 그런 짜증 내는 습관을 좋아하겠는가.
아내는 내 짜증 내는 습관을 정말 싫어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부부 싸움을 했다. 결혼한 지 40년이나 되다 보니 신혼 때 보다 빈도는 잦아들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것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한다. 아내는 내 짜증 내는 습관을 고쳐야만 살 수 있다고 하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자꾸 싸움을 걸어왔다. 그런데 나는 왜 그것을 못 고칠까. 명색이 가정행복코치인데 남들한테 아내를 사랑한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왜 짜증 내는 습관을 못 고칠까.
짜증이나 신경질을 뇌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 에너지가 부족하면 뇌의 생존 전략이 실행된다고 한다. 에너지 회피 공정, 즉 뇌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방해받을 때 짜증이나 신경질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인 관계가 단절되고 결과적으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대상이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표출된다는 것이다. 결국 가족이 덤터기를 쓰게 된다. 누가 모르는 사람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짜증이나 신경질을 내겠는가. 그랬다가는 얻어터지거나 관계 단절로 이어질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는 'GIGO' 이론으로 설명하고 싶다. 컴퓨터 용어로 ‘garbage in, garbage out’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이다. 유용한 결과를 얻으려면 유용한 자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자료처리의 원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뇌의 저장 장치도 이와 같아서 아내가 지적하면 할수록 그것이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툭 튀어나왔던 것이다. 마음으로는 고치려고 했지만 정작 뇌는 아내가 지적하는 짜증 내는 습관을 저장해놓고 자꾸 기억해 냈던 것이다.
최근 그것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
아내가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당신이 나한테 짜증 안 내니까 너무 좋아요. 감사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앞으로 짜증을 안 내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놀라웠다. 신기했다.
‘아, 바로 이거구나!’
아내가 비난하거나 지적을 통해 나를 고치려 했을 때는 그게 오히려 내 짜증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일이 잦을수록 뇌는 부정적 신호들로 가득 채워졌지만, 아내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자 뇌는 긍정적 신호로 채워져 점점 더 순화되었다. 40년 못된 습관과도 이제 헤어질 결심이 생겼다.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자녀의 잘못된 습관을 지적함으로써 고치기를 원하지만 자녀들은 고치기는커녕 점점 더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 그 모습을 본 부모는 속이 터져 또 지적하고 자녀는 또 그 행동을 되풀이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나는 이걸 ’세뇌화’ 또는 뇌의 ‘고착화’라고 부른다. 그렇다. 성경에 나오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리는 대로 네게 행하리니”와 같은 맥락이다. 뇌는 똑똑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멍청하다. 뇌는 옳고 바른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입력하는 대로 기억한다. 그것이 나쁘고 틀린 것일지라도. 내가 뇌에 무엇을 주입하느냐에 따라 내 뇌에 선악이 구분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뇌는 자주 본 것, 자주 들은 것들로 가득 차게 되고 그걸 꺼내 쓴다. 쓰레기를 넣었으니 쓰레기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뇌에 입력된 것을 바꿔줘야 한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자녀들에게 “너는 안 된다, 못 한다”라고 하면 점점 안 하게 되고 못 하게 된다. 반대로 “너는 ~하게 될 것이다, 할 수 있다”라고 하면 차 그런 아이로 변하게 된다.
남편은 아내는 배우자 하기 나름이고, 자녀도 부모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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