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어떻게 삶을 치유하는가>
노태린著, 클라우드나인 刊
대체로 사람들은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 있다. 내 경우에는 직업상 결혼생활, 부부,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주로 읽고 취향상 자기계발서나 인문학 책을 읽는다. 웬만해선 공학서적은 읽지 않는다. 하물며 병원 디자인에 관한 책을 읽으리라곤 생각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됐는데 재미있기도 하고 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게 된 계기가 됐다
이 책 진짜 재밌다. 병원 관계자들이나 디자이너들은 꼭 봐야 할 책이겠지만 나 같은 일반인도 읽으면서 인식의 확장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흔히들 공간 리모델링이 있은 후 변화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장의 사진, 즉
Before & After다. 그러나 그 사이에 수많은 과정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병원이라는 특수 공간에서 건축주(주로 병원장)의 로망,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와 한정된 예산 사이에서 디자이너가 겪는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 노 작가는 헬스케어 디자인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훌륭히 그 역할을 감당해내고 있다.
미국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이다.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화장실이 장애인의 편익을 도모했는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분 짓기 때문에 애초부터 그런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편의성보다 인간성에 초점을 맞춘 놀라운 발상이다.
노 작가는 이 책에서 국내외 수많은 병원 디자인 혁신사례를 알려준다.
그중 그가 설계한 군산 휴내과의 환하게 열려 있는 대기실이 퇴근 후 동네 사랑방으로 바뀌어 저녁 세미나를 연다는 대목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또 연세암병원 소아청소년 암센터의 획기적 디자인을 통해 한 소아암 환자가 “안 아파도 병원에 또 놀러 오고 싶어요”라는 피드백을 들었을 때 디자이너는 얼마나 가슴 벅찼을까
병원에 가짜 버스 정류장이 있다?
독일 발터 코르테스 요양을 벤치마킹한 인천참사랑 병원의 햇살데이케어센터에는 실제로 운영하지 않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치매 환자의 '배회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가짜 버스 정류장을 만든 것이다.
미국 여객 철도 운영기관 암트랙 Amtrak의 ‘고객 여정 지도’(Customer Journey Map 열차 승객은 여행 계획을 위해 1단계 즉 여행 관련 정보를 학습하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된다)을 벤치마킹한 ‘환자 여정 지도’ Pain point Journey Map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은 열차 승객이나 병원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마케팅에서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그는 말한다. 공간 디자이너는 반복되는 회의 지옥 속에서 균형 있게 의견을 조정하고 배치하는 지휘자이며 사람 중심의 공간 혁신을 이끌어가는 스페이스 이노베이터(space innovator)다. 그는 공간 디자인의 시작점은 사람이고 지향점은 공감이라고 말한다. 인간 중심 디자인의 시작과 끝은 공감이다.
공간 = 공감
내가 건축주로서 이런 디자이너를 만난다면 평생에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참에 건물을 하나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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