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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솔 Sep 05. 2022

시끄러운 집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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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너무나 시끄럽다. 정말 믿을 수 없이 시끄러워서 나는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메일 매일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온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30년도 넘은 한 동짜리 복도식 아파트다. 낡은 아파트다 보니 신축 아파트에 비해서 방음에 취약하다. 왜 이 집을 고를 때는 오래된 아파트이니 낡았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소음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을까?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꽁꽁 묶어서 매질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이사오지 못하게 하고 싶다.


이사할 당시 이 집을 고른 이유는 무척 쌌기 때문이다. 이 집은 정말 쌌다. 실평수가 20평인 아파트의 가격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쌌다. 갓 백일 된 아기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인 내가 가진돈은 적었고, 내가 이사하기로 마음먹은 지역은 무척 시골이라 선택의 폭이 좁았다. 신축 아파트가 매매로 나와있긴 했지만 그런 돈은 없었고 다양한 평수의 빌라가 즐비한 서울과 달리, 이곳의 빌라는 원룸뿐이었다.

비교적 싸고, 원룸에 비해 평수가 넓은 20평짜리 소형 아파트. 낡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나은 곳이었다. 그리고 낡은 집도 내가 잘 다듬으면 살만한 공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믿음은 반만 맞았다. 장판을 새로 깔고, 페인트칠을 하고 가구를 오밀조밀 배치하고, 예쁜 조명을 달고 깨끗이 쓸고 닦아 관리하니 제법 아늑한 집이 되었지만 살만한 집은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극악무도한 소음충들이 윗집은 물론이고, 아랫집 옆집에도 살고 있었다.

이 글들은 지난 1년여 동안 매일 밤마다 울고, 화내고, 과호흡과 자살충동을 느꼈던 기록들이다. 물론 이 집은 여전히 시끄럽고, 나는 매일 분노한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체념이 되고, 포기가 된다.

나는 이 집을 떠날 수 없고(설마 평생은 아니겠지), 나를 괴롭히는 소음의 원인 된 자들도 계속 내 주위에서 나를 괴롭히며 살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몹시 가난하기 때문이다.(우리로 엮는 것조차 진절머리가 난다.)


그들도 가난하기 때문에 이 낡은 아파트에서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도 가난하기 때문에 악착같이 그들을 견디면서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

층간소음은 이사가 답이라지만 지금 너무 가난해서 이사를 갈 수가 없다.

도저히 도망칠 방법이 없다.


얼마 전 층간소음 피해자 쉼터 카페에 가입하고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의 글을 보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너무나 큰 위로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조차 완연히 이해해 줄 수 없는 내 분노와 괴로움을 함께 겪는 얼굴 모르는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큰 위로가 되어서 그날은 밤새 울었다.

그리고 매일 그 카페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의 글을 정독하고 나면 어느 정도 마음의 괴로움이 해소가 된다.

이렇게 공감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쓴다.


도망칠 수 없는 집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들을 위해서.


우리 같이, 죽지 맙시다. 살아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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