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
윗집 여자와 연락을 주고받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당근 마켓에 올린 무료 나눔 제품을 받으러 온다는 사람에게 주소를 알려줬더니 자기는 바로 윗집에 산다고 했다. 사용할 아기는 내 아이보다 두 달이 어리다고 했다.
낯선 지역의 낯선 아파트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았다.
그 후 따로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윗집에서 아이의 울음소리 나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무척 반가웠다. 어느 날은 쿵, 하고 엄청나게 큰 소리에 새벽잠을 깨고 곧이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서
침대에서 떨어졌구나 싶어서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다시 잠들 때까지 아이는 괜찮은지 계속해서 걱정도 되고 속상하기까지 했다.
이런 애정 어린 마음이 끝까지 갔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 마음은 윗집 아이가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 박살이 나다 못해 부스러기가 되었다.
불행의 시작은 윗집 아이와 우리 집 아이가 자는 시간이 3시간가량 차이가 난다는 데서부터 왔다.
내 아이는 7시 반이면 잠들어서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다.
윗집 아이는 11시 즈음해서 잠들어서 9시가 조금 넘으면 일어났다.
낮시간에는 집에서 나는 모든 소음을 참아낼 수 있었지만 아이가 잠들면 나는 내 아이가 깰까 봐 두려웠고, 너무 피곤해서 빨리 자고 싶었다. 윗집 아이가 잠든 후에야 내가 잠들면 나는 하루에 5시간도 채 못 자고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너무 괴로웠다.
반갑게 들리던 아이의 목소리가 불쾌해졌고, 잠을 못 자 한껏 예민해지자 9시가 넘어서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다가 아이가 뛰는 쿵쿵 소리가 들리면 내 심장도 같이 쿵쿵 뛰었다.
그 시기의 아이는 절대 일 분도 쉬지 않았다. 하루 종일 뛰었고, 걸었고 물건을 집어던졌다.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로 인해 싫은 소리 하고 싶지 않았다.
참은 보람이 있었다. 윗집 아이는 곧 어린이집에 갔다. 조금 더 일찍 자기 시작했고 조금 더 일찍 일어났다.
우리 아이도 그 맘 때쯤 자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고 조금 늦게 일어났다. 이제 1시간 반 정도 텀이 생겼고, 그 정도는 참아 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평화롭다고 자위하던 어느 날, 8시 20분이면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조용해지던 집이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이제 오후 시간이 되면 반복되는 쿵쿵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주를 넘기고 어느 날 저녁, 처음으로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다. 윗집이 너무 시끄러우니 늦은 시간에는 배려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채팅이 왔다.
"안녕하세요 ***호입니다. 저희애가 이제 15개월이 됐는데 활동량이 너무 많아서 집안 물건 이것저것 다 끄집어내서 던지기도 하고 끌고 다니기도 합니다. 저희도 시끄러운 거 알고 너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좀 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시간에 피해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전부 다 이해한다고, 너무나 이해한다고 하지만 너무 괴로워 말씀 전달을 부탁드렸다, 그동안은 몇 시간 정도라 참을 만했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쿵쾅대기 시작하니 미칠 것 같다고, 아이가 통제가 안 되는 건 백번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전체적으로 층간소음 매트 시공을 했다고 은근히 매트를 깔 예정은 없는지 찔러보았다.
곧바로 온 답장에서는 아이가 폐렴에 걸려 어린이집도 못 가고 외출도 못하고 있어서 더 시끄러우셨을 것 같다, 너무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부끼리 밑에 집분들은 아마 죽고 싶을 거라고 죄송해서 어떻게 하냐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갈 예정이라 매트 시공을 못하고 있다.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뭔가 희망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최대한 주의하겠다는 얘기는 진심일지언정,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알았지만 이사를 간다는 말은 의미가 있었다.
층간소음 피해자들에게 가장 반가운 소리가 아닌가.
가해자가 이사를 간다니.
기쁘다. 기뻤다.
세상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저를 이 지옥에서 내보내 주시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가 아프다니 걱정이 된다고, 어머님도 아이도 힘들겠다고 답장을 보내고 훈훈하게 이야기를 끝냈다.
끝이 보이는 고통은 확실히 견디기가 쉬워진다.
하루하루 날이 더 지나가면서 달력의 숫자가 뒤로 갈수록 아이의 발소리가 밉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아이는 다시 어린이집에 가고, 밤이 되면 잠들기 마련이다.
드디어 빛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그 빛이 꺼지다 못해 더 밑바닥 지옥으로 굴러 떨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