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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싼 Dec 07. 2024

초등 영작에서 많이 하는 착각

영어 쓰기, 제발 이렇게 가르치지 마세요

  나는 미국 초등학교에서 영어 교사(ELL)로 근무하며,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물론, 담임교사들에게 영어 지도법을 코칭하고, 교육구와 학교 내에서 다양한 연수를 기획하고 발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교사와 학부모들과 상담하다 보면 가장 많이 도움을 요청받는 영역이 바로 쓰기(Writing)다. 말하기(Speaking)와 듣기(Listening)는 교실에서 또래와 교류하거나 기본적인 학습 활동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비교적 빠르게 일정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읽기(Reading)는 언어의 네 가지 영역 중 가장 직관적이기 때문에, 파닉스로 잘 알려진 음운 규칙 학습이나 독해 연습 등 기존의 교수법만으로도 비교적 수월하게 실력 향상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쓰기는 다르다.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교수법이 필수적임에도 이를 제대로 알고 적용하는 교사는 많지 않다. 학부모들 또한 가정에서 쓰기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에게는 가장 가르치기 까다로운 과목이자, 학생들에게는 가장 지루하고 어려운 과목인 쓰기 수업.

그 원인은 바로 다음과 같은 착각에서 비롯된다.


착각 1) 쓰기 학습 과정 = 교정/피드백


  교정은 작문의 과정 중 극히 일부이자 제일 마지막 마무리 단계에 불과하다.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자면, 다 지은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과정일 뿐인 것이다. 말 그대로 완성한 글을 검토하는 것이지, 글쓰기 학습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내가 가장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쓰기 교수법은 학생에게 무작위로 지문을 주고 2~30분간 혼자 쓰게 한 뒤, 교사/학부모가 잘못된 부분을 일일이 지적하는 방식이다. 그런 다음 학생이 혼자 수정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는 작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채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혹시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과정을 쓰기 연습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길 권한다. 예전에 들었던 글쓰기 교수법 권위자 강의에서 가장 인상 깊게 새겼던 말이 있다. “Referencing is not teaching". 아직 언어 창고에 어휘나 표현 등 "말"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막무가내로 글을 써보라고 하는 건 정말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과제가 될 뿐이다. 피드백이라고 빨간 줄 잔뜩 그어둔 글을 보고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렇게 고쳐 쓴 글이 과연 정말 학생/아이 본인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장은 스펠링 몇 개를 더 맞히고 문법 몇 가지를 더 깨우친 것이 쓰기 실력의 향상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쓰기 근육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 여전히 새로운 지문을 만나면 막막해하고 글의 목적이나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방황할 것이다.


  위와 같은 채점식 교정은 어느 정도 언어 기반이 탄탄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에게는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초·중등(K-8) 학생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잃거나, 자신감이 위축되는 등의 부작용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착각 2) 작문은 앉은자리에서 30분 만에 할 수 있는 것


  최근 한국에서 시험을 보고 입학해야 하는 학원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를 비판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7세 고시'로 유명한 레벨테스트 경험담이나, 아이가 30분 만에 써낸 완성도 높은 영작문을 자랑삼아 올린 SNS 게시글도 보았다. 한국의 조기 영어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고 하면서, 아이들의 아웃풋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라는 댓글들을 보며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일곱 살 아이가 30분 동안 쓴 몇 문단의 글이 의미하는 게 뭘까? 아이는 자신이 쓴 글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한때 작가를 꿈꿀 정도로 글쓰기에 몰두했던 나조차도, 임의의 주제로 30분 동안 글을 쓰라고 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A4용지 반장이나 제대로 채울 수 있으려나? 주제를 탐색하고 글을 구상하는 데만 해도 30분은 커녕, 하루 온종일을 써도 부족할 것이다. 성인인 나도 이런데, 아이들은 어떨까? 물론 연습한 대로 기계적으로 암기한 문장들을 늘어놓아 분량을 채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학원에 입학해 비슷한 방식으로 목적 없는 영작을 반복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알맹이 없이 죽은 글만 계속 쓰는 훈련이 최종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특히 지금은 AI시대다. 다양한 구조와 표현으로 전문적이면서 창의적이기까지 한 글을 척척 써내는 AI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기계적이고 일차원적인 쓰기 훈련 방식은 너무 구시대적이지 않은가.


  좋은 글이란 글을 쓰는 목적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학습의 기본은 자신의 사고를 바탕으로 뚜렷한 동기를 갖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단계적으로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시험처럼 서둘러 결과만 내는 데 치중하다 보면, 아이들이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사고하며, 동기부여를 통한 목적 있는 글을 써보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된다. 오히려 어릴 때일수록 더욱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러한 글쓰기의 총체적인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착각 3) 작문은 혼자 조용히 하는 과정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단순히 빠르게 글을 써내는 기술이 아니라, 사고의 폭을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심도 있고 풍부한 글로 의미를 담아내는 글쓰기의 본질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늘 스스로에게 상기하는 철학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꼭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서구와 동양의 학습 문화를 비교해 보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협동성"이다. 한국에서도 교육과정이 지속적으로 개정되며 학생들 간 협동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쓰기만큼은 여전히 미국에 비해 고립된 학습 활동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미국 초등학교의 쓰기 과정은 "Brainstorming/Pre-writing(구상) - Drafting(초안 작성) - Revising(퇴고) - Editing(교정) - Publishing(발표/발행)"의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Drafting(초안 작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단계는 전체 학급, 소그룹, 짝 활동 등 다른 학생들과 함께하는 협동 학습으로 진행된다. 상호 교류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글을 이해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은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을 배우고 표현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협동 학습 방식은 단순히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의사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쓰기의 목적은 결국 의미를 타인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데 있으므로, 이를 개인적인 과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활동으로 확장하는 연습을 미리 경험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찍이 글을 통해 사고의 결과물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을 받았기에 미국 학생들이 더욱 토론과 논의에 강한 역량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브런치북을 연재하며 내가 앞서 언급했던 "착각"에서 벗어나 학생들로 하여금 좀 더 주체적이고 체계적인 영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차차 나눠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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