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비건은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까?

2년 전의 나에게 쓰는 편지

by 여유

안녕 예송아. 나는 2년 후의 너야. 불면증을 겪느라 많이 힘들지? 얼마나 힘들지,, 내가 해주는 위로가 모자랄 것 같아. 그래도 그 힘든 날들은 끝이 있을 거고, 너의 지속 가능한 삶을 찾아나설 날이 올거야. 내가 2년 동안 걸어온 길이야.


적어놓고 보니 참 많은 일들을 있었다, 그치? 처음엔 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시작한 채식이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구의 지속 가능함과, 지금도 고통 받고 있을 동물들을 위해서도 채식을 하게 됐어. 지금의 너가 보기에는 비건이 된 내가 신기해 보이기도 하겠다. 원래 환경에는 관심 없고 심리학이랑 사회 문제에만 관심 있었잖아. 근데 결국은 그런 너에 대한 관심과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말해주고 싶어. 우리의 몸은 정신과 신체가 연결돼있으니 행복하려면 몸도 건강해야하고, 그러려면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함을 깨달았거든. 그리고 더이상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는 사람과 분리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어. 홍수, 폭염, 가뭄 등등 세계 곳곳에서 지구가 시름시름 앓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고, 그로 인해 사다리 아래에 있는 사람들부터 죽어가고, 몇십 년 내에 우리에게도 닥칠 문제거든. 2021년 11월 학교 언론사에서 기사를 쓰려고 기후 위기 다른 기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어느 순간 확신이 들었어. “아, 이것은 내가 갈 길이다”하는 사명 또는 소명(vocation). 앞으로도 더 중요해질 이슈이니 사회의 요구에도 필요한 인재이고 내 가치관에도 맞는 일이고, 이걸로 밀고 나가면 고민할 게 없을 것 같았어. 실제로 지금까지 오는 동안 별로 고민 안 했고 직업, 그 위에 가치관과 비전이 명확하니 또래 얘들보다 진로 고민도 별로 안 하는 것 같아.


라홀님의 셀프케어 클래스를 들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야. 채식을 해야하는 이유뿐만 아니라 방법을 알고 더 쉽게 채식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내 몸을 위한 먹거리를 챙길 줄 안다는 기쁨도 잠시, 이후 외로운 시기들이 찾아왔었지만 비건 동아리와 쓰줍인을 만나면서 내가 포용되는 공동체를 여럿 가지게 되어서 감사해. 얼마 전에는 부산 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왔어! 혼자서 여행 갈 대담함도 없었는데 말이지! 쓰줍인을 통해서 멀리 있는 곳에도 친구가 생겨서 너무 기뻐. 어딜 가든 갈 비건 식당은 정해져 있고, 또 만날 사람도 있다는 게 나를 대담하게 만든 것 같아. 비건이라는 공통점이 사람들과 더 빠르게 끈끈하게 친해지게 만들고 말야.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생겼어. 비건 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외국인 친구들과 친구가 되고, 비건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과도 친한 친구가 되고 말야! 그 친구가 추천해준 프랑스 지역으로 나는 올해 8월에 교환학생을 가. 외국으로 가니 두려울 만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 쉽게 비건 요리들을 할 수 있고 더 넓은 세상에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더 여유로운 문화에 친환경적인 제도들과 마을을 직접 경험해볼 게 기대돼. 너가 2021년 여름에 토플 준비 대신 삶을 재정비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던 건 틀리지 않았어. 토플 준비가 늦어졌기에 4학년 1학기에 뒤늦게 교환학생을 가게 되지만, 그 덕에 채식을 시작하고 이렇게 더 큰 비전과 소망을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잖아?


지금의 너가 그래서 지금은 불면증 없고, 잠 잘 자고, 행복하냐고 물으면, 음, 꼭 그렇진 않다고 답할 것 같아. 여전히 어떤 하루는 어젯밤 늦게 잔 내가 싫고, 피곤하다고 안 좋은 음식 많이 먹어댄 내가 싫고, 앞으로 더 못나질 내 모습과 더 유해해질 세상에서 오래 살기 싫고, 사람들을 즐겁게 만나고 왔으면서도 갑작스레 불안정한 기분을 느끼기도 해. 그렇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때보다 지금 더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거야. 곁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우울한 기분에서 더 빨리 빠져나오고, 과거의 나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잎새에 이는 부는 바람에도 떨지는 않아. 고3때 우울했던 시기에 읽었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 기억나? 나왔던 구절 기억나? 나는 아직도 기억해. 거기서 이런 구절이 나와.


“지금은 관계가 좁고 삼각형 같아서 마음을 많이 찌르겠지만, 팔각형보다 십육각형이 원에 더 가깝잖아요? 다양하고 깊은 관계가 많아질수록 원처럼 동그랗고 무뎌져서 마음을 덜 찌를 거예요. 괜찮아질 거예요.”

지금이 딱 그거 같아. 덜 아프고 덜 불안해.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 집중돼있었던 시선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에 고민하고 있어. 3개월, 6개월, 1년, 그거 짧은 것 같아도 사람이 많이 바뀌고 성숙해지더라고. 나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이러저러한 상황에 나를 많이 던져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두려웠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회피하지 않고 도전하다 보니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그런 ‘재앙’은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경험해가며 더 무뎌지고 단단해지고 있어. 두려움보다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문밖을 나가고 있어.


아무튼, 나는 나의 시간 속에서 앞으로도 잘 살아볼게. 너가 준 선물들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또 나아가볼게. 너도 너에게 조금 더 많이 웃어주길 바라. 고맙고, 사랑해.


벚꽃이 또 한번 피는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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