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매거진 '윤문하셨습니다' 기고글
시골의 작은 학교, 1학년 2반 교실은 2층에 있다. 유치원을 갓 졸업한 동생이 계단을 어떻게 올라 다닐까 걱정되면서도,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풍기는 알 수 없는 포근함에 금방 걱정을 잊었다. 8살 아이들은 나를 보며 흥분했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처음 보는 나를 보고는 "누구세요?"하고 당돌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리고 당연히 대답할 틈도 주지 않는다. 여섯 명의 아이들은 나를 감싸고 누구세요? 누구예요? 누구세요? 를 반복한다. 나는 한숨 고르고 "동동이 누나야"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거인이라고 했다. 자기보다 키가 두 배나 큰 거인을 신기해했다. 담임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 어떤 거인들이 오는지 볼까"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내가 선생님이었으면 "어른한테 거인이라고 하면 못써" 하고 주의를 줬을 텐데, 나는 어떤 거인들 중에 제일 못된 거인이었다.
이날 책거리는 학생들이 주로 하는 활동으로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얼굴만 한 향초 두 손 꼭 잡고는 자신의 생일 시를 낭송했다. "근사하고 착한 백합처럼, 아주 밝은 달빛처럼. 내 모든 생각이 아름다움과 진실과 빛으로 채워집니다. 풍성하고 붉은 장미처럼 내 말과 행동이 힘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제일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시를 낭송한 선이의 생일 시였다. 정은이와 수미의 생일 시는 2반 아이들이 모두 함께 낭송해줬다. 정은이와 수미에게는 조금 어려웠던 일이, 모두의 힘이 합쳐서 완성됐다. 다른 친구들이 소고춤을 출 때, 정은이는 앉아서 장구를 쳤다. 한 박자도 놓치지 않으려는 영은이의 의지가 떨리는 손, 흥얼거리는 노래에서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정은이의 장구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친구들의 소고춤에 제일 잘 어울리는 박자였다. 장기자랑 시간에는 오카리나 연주, 옆 돌기, 콩 주머니 주고받기 등 온갖 재능을 뽐내었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해서인지 모든 순서가 끝나고 아이들은 엄마가 준비한 귤과 떡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사과 주스도 단숨에 들이켰다. 그때, 계속 까불까불 하던 준민이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어디가? 가지마! 가지마! 하며 점프해서 내 두 볼을 만지고, 나에게 매달려 손을 놓지 않았다. 내가 힘에 부쳐 준민이를 바닥에 내려놓기라도 하면 자기를 왜 내려놓느냐고 화를 냈다. 그날 준민이의 부모님만 오시지 않았다. 나는 준민이를 있는 힘껏 들어 올렸다. 두 볼을 실컷 만지게 놔뒀고, 매달리면,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부모님들이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고 계셨다. 연희 어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하시기도 전에 눈물을 쏟으셨다. 적응에 서투른 연희가 1학년을 잘 마쳐서 다행이라고. 정은이 어머니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정은이가 걸을 수도 있을 거라는 소식이었다. 신촌 세브란스에서만 하는 다리 수술을 받게 될 거라고. 2학년이 되면 조금은 걸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신다고 하셨다.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해주었다. 1학년 2반 친구들은 그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순간에도 초등학교 1학년 같은 장난을 계속 중이었다.
교실을 나와 운동장을 둘러본다. 운동장이라기엔 작고 낡아 볼품없는 그네와 미끄럼틀이 전부였다. 하지만 친구들은 볼이 빨개진 채로, 그 추운 공기를 마시며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어린 친구들은 나를 경계하면서도, 힐끔힐끔 쳐다보며 다가온다. "먹을래요?" 하면서 방과 후 시간에 만든 쿠키를 내밀기도 한다. 내가 누군지도 모를 텐데, 아무 편견 없이 나를 사랑한다.
나는 이 작은 세계에 와서 태초의 아주 작은 내가 되고, 소인에게서 나오는 큰 사랑을 실감한다. 나무엔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인데도, 작은 세상이라 그런지 금방 따뜻하게 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