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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 Dec 08. 2023

환대는 사회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2015)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조건부의 환대 역시 환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환대가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되지 않는 게 아닐까? (25쪽)


  인권은 사람이 사람이기에 갖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고, 인종·국적·성별·종교 등 그 어떤 것에도 관계되거나 차별됨 없이 모든 인간은 존엄성과 권리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말한다. 대부분의 국가와 인류가 동의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왜 여전히 불평등과 차별, 혐오를 겪고 있는가.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모든 말과 용어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철학의 장을 펼치고, 논리적인 구조를 세운다. 사람의 개념부터 확인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종으로써 자연적 사실이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가져야 즉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또 사회는 물리적, 지리적 경계가 아닌 현상 공간이라는 아렌트의 개념을 빌려와 '잠재적 상호작용의 지평'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사회에 속하고자 하는 인간은 상호작용을 통한 성원권(인정) 투쟁을 하는 것이다. 

 

사람다움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났거나 사회화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본질이 아니다. 그보다 사람다움은 우리에게 있다고 여겨지며,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체하는 어떤 것, 서로가 서로의 연극을 믿어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어떤 것으로 본질을 갖지 않는 현상이다. (83쪽)


  우리 각자는 사람다움을 갖고 있는 척 연기하고, 서로는 그러한 연기를 믿어주며 본질이 없는 사람다움이 현상된다.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이 그 자리에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인정받는 것이며 환대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개별적 특성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규범을 강조하는 사회와 점차 분리되어 개인은 자유와 자아의 발현을 갈구한다. 하지만 결국 그 자아는 타인의 인정을 욕구하며 갈등이 생긴다. 또한 신자유주의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개인은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점점 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개미지옥같은 경제 구조는 탓할 이 없는 박탈감과 굴욕감을 안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말은 경전과 법전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터넷 역시 환대받지 못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한 몫 하지 않았나. 한계가 없는 가상의 인터넷 공간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의 공간을 점유하고 표현하며, 원하면 얼마든지 다채로운 공동체에 속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서로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급급한 손가락들의 모임은 우리의 존재를 알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인정받는 게 있다면 그것은 나의 손가락의 목소리이거나 인정받기 위해 한껏 꾸민 단편적인 모습들 뿐이다. 어떤 수단보다 신속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지만 밑 빠진 독처럼 공허함만 커진다. 하지만 독에서 빠져나오기는 더욱 어렵다. 새로운 공동체에 구성원으로 환대받은 경험은 많지 않고, 인터넷만큼 현실은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대란 주는 힘을 주는 것이며, 받는 사람을 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197쪽)

  저자는 이 불행하고 처절한 사회의 대안으로 '절대적 환대'를 제시한다. 애초에 사회란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으며, 복수하지 않는 절대적 환대가 있었기에 이루어진 곳이므로 우리 역시 절대적 환대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그래서 '절대적 환대'가 어떤 건데?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 건데? 라는 생각이 든다. 공공성을 아주 잠깐 언급하지만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형식을 정하면 개념이 오염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 절대적 환대를 개인의 차원에서 실천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내면화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조를 사회에 요구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절대적 환대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함께 책을 읽은 이들과 이야기하며 혼자 정리한 것은 1) 공통적인(보편적인) 특성 발견하기 2) 역할 부여하기 이다. 저자와 여러 철학자들이 얘기하듯 개성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는 개별적 특성이지만 공동체에 사람으로서 들어가기 위해 사람다움을 주고받기 위해 환대하는 이들은 공통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중요성의 크고 작음을 떠나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여 사회에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환대는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은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 때 인간의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긍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공동체 밖 인간이 우리에게 입힐 피해를 상상하며 배척하기보다 내가 언젠가 공동체에 들어가고자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그때 환대받길 원하는 마음을 지금의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짧은 식견으로 나름대로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애초에 사회가 구성된 시점부터 이어진 고민이니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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