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매드랜드'
이번 주는 영화인들에겐 축제 같은 한주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더 파더’ 안소니 홉킨스의 남우주연상과 오늘 소개해드릴 이 영화의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까지도 참 반가웠습니다.
지난주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접한 저는 주저 없이 ‘뭔가 사고 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미 전 세계적으로 역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은 물론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아시아계 여성 감독 최초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으며 이번 아카데미에서의 수상을 예견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만큼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는 것이겠죠. 서두가 길었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 입니다.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은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에서 광부인 남편과 함께 학교의 임시교사로 생활했습니다. 평범했던 그들의 일상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요. 88년간 운영했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함께 일했던 광부들이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고 남편마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죠.
유령 같은 마을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펀. 그때부터 ‘선구자’라 이름 지은 차에 최소한의 짐을 실어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단기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식사를 하거나 씻거나 잠을 자는 등의 기본적인 생활은 ‘선구자’에서 하죠. 요즘 방송 중인 예능 프로 ‘바퀴 달린 집’처럼 주차하는 곳이 내 집 앞마당이 되는 겁니다.
어느 날 펀이 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고르던 중 예전 이웃에 살던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요. 남편을 잃은 펀을 위로하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갈 곳이 없다면 자신의 집에 와서 생활해도 좋다’는 말을 합니다. 그녀의 딸은 ‘집이 없다면서요?’라며 대놓고 묻기도 하죠. 이때 펀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집이 없는 게 아니야, 거주지가 없는 거지.
저는 한 번도 집과 거주지, 이 두 단어를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 대답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느낌표가 생겼는데요. 집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의미 외에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집이라는 개념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영화의 후반이 궁금해졌습니다.
펀은 애초에 ‘정착’이라는 단어를 몰랐다는 듯이 끊임없이 길 위를 유랑하는데요. 이 사이에서 마주치는 노매드들, 즉 본인과 같이 차에서 생활하며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합니다. 이런 펀의 삶을 보면서 인생이란 뚜렷한 목적지가 없더라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그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펀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원작에 감명을 받아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가 주인공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감독은 영화 속에서 노매드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녀가 그런 역할에 제격이다 싶어 펀 역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노매드들은 실제로 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캐스팅했다고 하는데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모습을 비춘 린다 메이와 밥 웰스, 스완키가 바로 그들입니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영화를 위해 이들 틈에서 실제 노매드 생활을 했는데요. 처음에는 노매드들이 그녀가 배우인지 모르고 대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한 일자리, 아마존 물류센터,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도 일자리를 제안했다고 하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다고 느낀 것은 이러한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바로 영상미입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소감 중 “꼭 큰 스크린에서 보라”는 말이 있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압도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네브래스카, 네바다 엠파이어, 맨도시노 카운티와 애리조나 쿼츠사이트, 캘리포니아 핸디우즈 국립공원 등을 담아낸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되었습니다. 영상 부문의 아카데미 상이라 불리는 ‘에너가 카메리마쥬’에서 최고 촬영상인 황금 개구리상을 받았다고 하니 꼭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즐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아니 삶이 끝난 후에도 쉴지언정 결코 멈추지 않을 펀의 삶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