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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Apr 18. 2021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면 바로 이런 느낌일까?

영화 '더 파더'

가까운 기억부터 점차 사라지고 물건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거나 매일 가던 길이 낯설어 헤매게 될 때. 단순한 덧셈이나 뺄셈이 어려워진다거나 평소에 온순하던 사람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잦아질 때. 우리는 이런 경우 치매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 중에서 전체 치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인성 치매는 알츠하이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죠.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80대 노인이 겪는 기억의 왜곡을 담은 영화입니다. ‘21세기 최고의 마스터피스’라 불릴 만큼 주연 배우 안소니 홉킨스의 신들린 연기와 더불어 기존에 본 적 없던 시선으로 알츠하이머를 그려낸 각본, 그걸 고스란히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화면 안에 담아낸 연출까지 삼박자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영화 ‘더 파더’입니다.

  

영화 '더 파더'에서 80대 노인 안소니 역을 맡은 배우 안소니 홉킨스. 


런던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80대 노인 안소니(안소니 홉킨스 분). 딸 앤(올리비아 콜맨 분)은 혼자 사는 그에게 가끔 들러 말동무도 해 주고 식사도 챙겨줍니다. 그런 딸이 별안간 집에 왔는데요.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도우미를 불러 내쫓았더니 찾아온 거였죠. 딸은 내가 혼자서 생활하는 게 어려울 거라 말하며 자신은 곧 런던을 떠나 파리에서 살 거라 말합니다.


다음날 차를 마시려고 주방에 들어선 안소니. 별안간 인기척이 들립니다. 딸이 온 건가 해서 나가봤는데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내 집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죠. 누구냐 물었더니 딸의 남편이라는 그. 딸은 5년 전에 이혼했는데…. 그리고 새 남자 친구와 함께 파리로 떠난다 말했는데… 혼란스러운 안소니를 본 그는 앤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님이 아프신 것 같다며 집으로 오라 말합니다.


저녁거리를 사러 슈퍼에 다녀온 앤. 안소니는 딸이 왔다는 소리에 현관문 앞까지 나서는데요. 이런. 어제 봤던 딸의 얼굴이 아닙니다. 배고프지 않냐고 묻는 딸을 그대로 두고 방 안으로 들어온 안소니. 뒤이어 들어온 딸이 괜찮냐 묻자 아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는데요. 남자가 어디 있냐며 집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고 말하죠. 다시 거실로 나온 안소니. 집에는 정말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본 남자는 누구이며, 내 딸은 어제 본 그녀였을까요? 아니면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녀일까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아버지 안소니를 각별히 보살피는 딸 앤 역을 맡은 올리비아 콜맨(왼쪽).


영화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겪는 기억의 왜곡을 관객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내가 알던 딸의 얼굴이 그다음 날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되고, 내가 기억하던 말이 사실과 다르기도 하고,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하루가 지나가는 안소니의 흔들리는 일상을 관객과 함께하게 되는데요.


영화를 주의 깊게 보다 보면 그 미묘한 차이는 주방에서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안소니가 사용하는 주방은 브라운 계열의 앤틱한 느낌이었다면 앤이 사용하는 주방은 그보다 더 밝은 우드 톤으로 심플하게 꾸며져 있죠. 같은 공간이지만 다르게 표현된 주방에서부터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미로 속에서 손으로 벽을 더듬어 길을 찾는 기분을 느꼈으면 한다”고 전했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니 감독의 의도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됐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존 알츠하이머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본 영화들과는 다르게 환자가 아니면 모를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알고 각본으로 썼을지 궁금해졌는데요. 

  

영화의 시작부터 안소니를 점찍었다던 감독 플로리안 젤러(가운데).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감독이자 각본가인 플로리안 젤러의 동명의 연극이었습니다. 이미 연극으로서 프랑스 최고의 작품에만 주는 토니상까지 받았다면 말 다했죠. 플로리안은 이 연극을 영화로 옮기기로 했을 때 처음부터 안소니 홉킨스를 주연으로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극 중 이름도 자연스럽게 안소니가 되었나 봅니다.


80대 노인 안소니 역을 맡은 안소니 홉킨스는 이 영화를 통해 84세의 나이로 최고령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가 되었는데요. 1992년 영화 ‘양들의 침묵’으로 이미 한 차례 수상한 그가 29년 만에 두 번째 수상을 점쳐 보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는 수상이 유력해 보입니다.


4월 25일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와 더불어 안소니 홉킨스에게도 좋은 소식이 들릴지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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