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죄 많은 소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빈센조’에는 빈센조 역인 송중기 배우만큼이나 화제가 되는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여빈 배우가 연기하는 홍차영 변호사인데요. 방영 초기 부정확한 발음에 오버 연기한다는 혹평을 뒤로하고 회차가 거듭할수록 극 중 캐릭터와 착붙이라는 호평을 얻었는데요.
독립, 상업영화 가릴 것 없이 주·조연 혹은 단역으로 얼굴을 알린 전여빈 배우는 오늘 소개해드릴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각인되었는데요. 10대 소녀들의 심리와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이 영화 덕분에 지난해 제56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 여자배우상을 받기도 했죠. 영화 ‘죄 많은 소녀’입니다.
같은 반 친구 경민(전소니 분)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형사들은 조사에 나섰고 학교에서도 학교 나름대로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이것저것 묻는데요. 그중에서도 어젯밤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전여빈 분)는 모든 사람에게 의심을 사게 됩니다.
별다른 유서도, 시신도 발견되지 않은 실종 상태에서 의심은 점점 커졌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이미 영희가 가해자가 된 것처럼 따돌리며 심지어 집까지 찾아가 폭행까지 일삼았죠. 학교에서는 사건이 조용히 넘어가길 바랐고 형사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속이 타는 건 딸이 행방불명된 이유조차 모르는 경민의 엄마였고 이들의 화살은 곧 영희에게 돌아옵니다.
성과가 없는 수색을 종료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쯤 강가에서 경민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곧바로 장례식을 치르게 되는데요. 점점 궁지에 몰리던 ‘죄 많은 소녀’ 영희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영희는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경민의 사건에 대한 화살은 영희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죄까지 덧씌워져 또 다른 친구 한솔(고원희 분)에게 돌아가는데요. 한솔은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하며 영희에게 용서를 구하죠.
치료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영희. 극단적인 선택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그녀는 친구들 앞에서 수화로 짤막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되죠.
영희가 수화를 하는 장면은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반복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막의 여부인데요. 자막이 나오는 후반부 장면에서 비로소 영희가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죠.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선생님과 반 친구들은 영희 손짓이 끝나자 박수를 치는데요.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만약 첫 장면에서 영희의 말을 이해했다면 영화의 흐름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영화는 여고생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군중심리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영희를 가해자로 치부해버릴 땐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친구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먼저 다가와 말을 걸기도 하고 미안했다며 사과도 하죠. 이러한 군중심리는 한솔 같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또 치사해 보이는 어른들의 이기심도 볼 수 있는데요. 선생님이란 호칭이 무색할 만큼 여고생들에 대해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적도 좋고 공부도 잘하던 애가 왜”라는 말로 그저 이 ‘소란’이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는 어른들을 보며 그들을 이해하기엔 서로에게 조금 잔인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시나리오를 직접 쓴 김의석 감독은 이 영화가 자전적 이야기임을 밝히며 “어느 날 갑자기 소중한 친구를 잃었고 자책의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물론 영화의 스토리는 사실이 아니다. 그때 친구의 죽음에 어느 정도 내 탓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인정하기는 싫었던 그 느낌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의외의 인물을 발견하실 수 있는데요.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자 극 중 영희의 과거 기억 속에 등장하는 가수 선우정아입니다. 처음으로 장편영화 음악 감독을 맡은 그녀의 음악들을 영화 곳곳에서 만나보시고 단역으로 출연하는 모습도 놓치지 않고 봐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