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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Dec 24. 2019

지금 당신에겐, 곁에 있어 줄 한 사람 있나요?

영화 '영하의 바람'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제목부터 요즘 날씨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영하와 친구 미진의 성장담을 그린 영화 ‘영하의 바람'입니다. 제목은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날씨의 의미가 담긴 영하(-)의 바람이란 뜻과 주인공 영하가 바라는 일이라는 뜻인 바람.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마음에 찬바람이 부는 영하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영화는 12세 때의 영하(권한솔 분)로 시작합니다. 엄마 은숙(신동미 분)과 함께 둘이 살던 영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빠에게 보내지는데요. 엄마의 집엔 새로 이사 오게 됐다는 영진(박종환 분)이 있었죠. 이삿짐과 함께 홀로 아빠 집 앞에 선 영하는 연락 두절된 아빠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결국 다시 엄마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 역시 연락이 안 되자 가구들과 함께 집 앞에 버려졌죠.

  

12세. 아빠, 엄마 모두에게 처음으로 버려진 영하.


시간은 15세가 된 영하로 건너뜁니다. 다시 엄마와 살게 된 영하는 새아빠가 생기는데요. 바로 영진이었죠. 영하에게는 절친인 미진(옥수분 분)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곁에서 의지하며 지냈던 그들은 친구이자 자매였는데요. 미진은 함께 살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삼촌네로 보내지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믿고 의지하던 친구를 떠나보내며 처음으로 큰 상실감을 맛보게 되죠.

  

15세. 절친인 미진이 삼촌네로 떠나고 처음으로 커다란 상실감을 맛보게 된 영하. 


다시 19세가 된 영하는 수능 시험을 치르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은숙은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영진과 함께 시골의 한 교회로 이사할 계획을 합니다. 또 앞으로 성인이 될 영하를 독립시키려 하죠. 


그러던 어느 날 술을 과하게 마신 영진이 자고 있던 영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합니다. 은숙에게 말해 봤지만 이미 낌새를 눈치채고 있던 그는 단지 실수였다고 치부하며 이해해주지 못하죠. 영하는 그 길로 집을 나가 미진에게 갑니다. 이때부터 영하의 위태로운 홀로서기가 시작됩니다.

  

19세. 믿었던 가족들의 배신으로 인해 홀로 서게 된 영하. 


누구에게나 영하의 바람이 몰아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견디게 하는 건 내 곁에 있어 줄 한 사람의 존재인 것 같다
- 감독의 말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사건들은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7년이라는 기간 동안 해야 했을, 또는 하지 않아야 했을 일들이 결국 영하를 현재의 상태로 만들어 놓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흔들리는 영하의 곁에는 그 역시 흔들리고 있던 미진이 있었습니다. 감독의 말처럼 힘든 시기를 견디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고 영하에겐 미진이, 미진에게는 영하가 그런 존재였던 거죠.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점은 교회의 등장이었습니다. 은숙은 교회의 목사가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미진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교회를 찾아갑니다. 종교에 별 관심이 없던 영하도 삶이 고되고 척박해지자 결국엔 교회로 향하는데요. 단지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건지. 그들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영화의 결말은 행복과 불행 중 어떤 결론에 다다르지 않고 어느 한 시점에서 끝나 버리는데요. 어린 나이에 부재와 상실, 결핍을 겪은 영하는 성인이 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그에게도 이제 영하가 아닌 영상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을지 모르겠습니다.


‘죽여주는 여자', ‘순수의 시대', ‘은교' 등 다수의 상업 영화에 참여해 실력을 쌓았던 김유리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첫 장편 영화 연출을 맡게 되었습니다. 감독은 데뷔작으로 소녀들의 성장담을 이야기한 이유에 대해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의 감수성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사회로 나오면서 성장통을 겪었다.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고,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는 최초의 부조리는 모두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며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밝혔죠.


인물들의 감정선을 섬세한 디테일로 그려내며 제25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보아온 여느 청소년의 풋풋한 이야기가 아닌 10대들의 서늘한 성장담은 어떨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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