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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Apr 16. 2020

꿈이 몽마르트 화가? 아들이 몰랐던 아버지의 열정

영화 ‘몽마르트 파파'

34년간 중학교 미술교사로 살아온 아버지 민형식 씨. 아버지에게는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다.


34년간 중학교 미술 교사로 살아온 아버지(민형식 씨)는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들(민병우 씨)은 아버지에게 앞으로 뭐 하실 거냐 묻는데요. 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지"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 대답에 호기심이 생긴 아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부터 카메라를 들고 따라가죠.


정식으로 은퇴식을 마친 아버지의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등산도 다니고 소소하게 카지노에 빠지기도 했죠. 그렇게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는 어느 날 이렇게 말합니다.

 

내 꿈은 몽마르트 언덕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려보는 거야

      

몽마르트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몽마르트 언덕이라고 아무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일련의 절차와 자격이 필요했는데요. 아들은 먼저 불어를 잘하는 사람을 섭외했습니다. 그리고 시청에 전화를 걸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아봤는데요. 


일단 파리 시청 사이트에 접속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2가지 선택권이 있는데요. 하나는 1년 동안 그릴 수 있는 자격이고 다른 하나는 1개월간 그릴 수 있는 자격입니다.


1년 과정은 프랑스 거주증이 별도로 필요한데요. 1개월 과정은 기간은 짧지만 별도의 비자 없이 초청 화가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신청서 하단에는 풍경화, 초상화, 캐리커처, 데생 중 그리고 싶은 분야를 선택할 수 있죠. 전 세계 많은 화가가 신청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매우 치열하다고 하네요.


이렇게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면 합격 여부를 통보해주는데요. 합격이 되면 정식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구역 번호를 배정받게 되는데요. 광장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정받은 구역 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네요. 거리 화가라고 그냥 그림만 잘 그리면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래된 꿈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민형식 씨의 아내 이운숙 씨. 남편이 파리에 가면 손에 장을 지진다며 독설을 날리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응원한다.


아들의 도움을 통해 아버지는 가까스로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아내(이운숙 씨)부터 만만치 않았는데요. “당신이 파리에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로 시작해서 “그림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며 독설을 날리기도 했죠. 유일한 악역(?)이라 할까요. 하지만 아내는 결국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향하며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촌철살인의 말로 남편의 꿈을 함께 합니다.


파리에 도착한 이 가족은 첫날부터 낭패를 맛보게 됩니다. 숙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만 소매치기를 당하게 되었죠. 이 때문에 친구들이 응원한다고 십시일반 모아준 돈과 여권 모두를 잃어버리게 되는데요. 다음날 말도 안 통하는 프랑스 경찰서에 찾아가 4시간가량 조서를 꾸미고 수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상업 영화보다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 3가지

영화 속에서 니스, 에즈 등 프랑스 지역과 미술관을 방문하는데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함께 간접 여행해 볼 수 있다.


장르가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상업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는 이 영화에는 관람 포인트 3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60대인 아버지가 새로운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감동적입니다. 이 부분은 아마도 세대별로 다를 거라 생각하는데요. 아버지와 같은 나이 또래 분들에게는 은퇴 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동년배를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실 겁니다.


제 나이 또래 친구들, 그러니까 은퇴를 앞둔 또는 은퇴한 아버지가 있는 분들은 ‘아버지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날 때부터 나의 아버지로 태어난 게 아니었으므로 분명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꿈이 있었을 텐데 ‘아버지’란 이름 아래 포기한 건 아닌지… 감독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꿈을 응원하게 되죠.


다음으로는 민형식, 이운숙 부부의 케미입니다. 첫 장면부터 티격태격하는 이 부부의 일상은 큰 웃음을 주는데요. 마치 우리 가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리얼한 영상이 담겼습니다. 이는 전문 촬영 감독이 아닌 아들이 직접 찍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민형식, 이운숙 부부의 아들 민병우 씨. 아들이 직접 찍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다큐멘터리가 완성되었다.


첫 촬영 후 전문 촬영 감독을 구하려고 했던 민병우 감독은 가족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찍었다고 하는데요. 화면을 보면 다른 영화들같이 좋은 카메라로 촬영하지 않았고 구도도 다소 흔들립니다. 촬영 기술이 능숙하지 않지만 이 때문에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다큐멘터리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에펠탑, 몽마르트 언덕을 비롯해 니스, 에즈, 에트르타 등 낭만적인 프랑스 지역 곳곳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 “거의 모든 미술관을 가봤다" 했을 정도로 고흐, 샤갈, 모네, 달리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가들의 작품까지 볼 수 있는데요. 영화를 통해 프랑스와 프랑스 미술관까지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감독은 아버지가 비 오는 와중에도 그림을 그리며 “지금 그리고 싶은 감정이 있는데 그것 비가 온다고 접으면 안 되잖아. 말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꿈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느낌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몽마르트 언덕에 입성한 아버지의 그림은 과연 팔릴 수 있을까요.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인생 2막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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