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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Nov 11. 2020

제2의 기생충 넘본다...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새 영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들 - 최선의 삶, 썸머85, 미나리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전례 없는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개최 여부부터 말이 많았는데요. 개·폐막식은 물론 레드카펫, 야외 행사 등이 전면 취소되었고 ‘영화의 전당’에서만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매년 일반 관객의 입장으로 참가하는 저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코로나19 방역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막 일주일 전 열린 ‘피케팅’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저는 이번 영화제에서 총 3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상영 순대로 나열하면 ‘최선의 삶’, ‘미나리’, ‘썸머 85’ 인데요. 오늘은 이 세 편의 영화에 간략하게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영화 ‘최선의 삶'에서 ‘강이' 역을 맡은 방민아 배우. 영화 속 강이는 어느 날 친구들과 가출을 감행한다.


먼저 임솔아 작가의 장편 소설을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 ‘최선의 삶’은 고등학생 3명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한 세 친구는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집을 구해 함께 살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생긴 충동적인 어떤 일로 인해 단단했던 친구 사이가 조금씩 어긋나게 되죠.


원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각 인물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생각 때문에 가출을 감행하게 된 건지 짧은 시간 안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책을 보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는 내레이션이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머릿속에 맴돌았고, 세 친구로 등장한 방민아, 한성민, 심달기 배우의 연기가 신선하면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썸머 85’라는 작품은 영화 ‘신의 은총으로’의 감독인 프랑수와 오종의 신작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1985년 여름이고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 촬영했는데요. 당장에라도 떠나고 싶은 요즘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10대 소년의 (다소 비극적으로 끝난)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연상케 했는데요. 개인적으론 데이빗 역으로 나왔던 ‘벤자민 부아쟁’이라는 배우가 티모시와 상당히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프랑수와 오종 감독의 신작 영화 ‘썸머 85’. 극 중 데이빗(왼쪽)이 알렉시(오른쪽)에게 헤드폰을 씌워주는데 이 장면이 마치 영화 ‘라붐'과 닮았다.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무도회장에서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추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때 데이빗이 알렉시에게 헤드폰을 씌워줍니다. 헤드폰 속 흘러나오는 노래는 1975년 발매된 로드 스튜어트의 ‘세일링’이라는 곡인데요. 이 장면에서 영화 ‘라붐' 속 마티유가 빅에게 헤드폰을 씌워주는 장면이 떠오릅니다(관객들도 이 부분에서 같이 웃었던 기억이). 아마도 감독의 오마주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 ‘미나리’에 대해 조금 길게 언급하고 싶은데요. 미국 이민 1세대를 그린 영화로 재미교포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병아리 감별사로 10년을 일하다 자기 농장을 만들기 위해 시골로 이사 온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따라 왔지만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어머니, 그리고 이들의 어여쁜 자식인 어린 남매. 마지막으로 딸과 함께 살려고 미국으로 온 외할머니가 등장하는데요. 아버지 역에는 한국계 배우 스티브 연, 어머니 역에는 한예리, 외할머니 역에는 윤여정이 맡았습니다.


영화 상영 전 윤여정, 한예리 배우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저예산 영화이기 때문에 촬영 기간 내내 한 집 생활했던 배우들은 정말 가족처럼 같이 밥도 먹고 빨래도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이런 합숙 아닌 합숙이 영화 속에서 정말 찐 가족 같은 케미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이민 1세대를 그린 영화 ‘미나리'. 아버지 역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오른쪽)이 맡았다. 그는 출연과 동시에 제작에도 참여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80년대 미국 이민 세대를 그리고 있는데요. 이 세대를 살아온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예를 들어 반찬을 입으로 씹어 잘라 주거나 잠 못 들 때 꼭 안아서 재워주는 장면들에선 저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외할머니 윤여정이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극 중 윤여정의 말에 따르면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누구나 뜯어 먹을 수 있는 미나리가 마치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했던 한국인 같았습니다.


한국 개봉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난 1월 제36회 선댄스 영화제 미국 극영화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 관객상을 받으며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는데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내년 오스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개봉한다면 극장에서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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