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빈에 대하여'
여성이 한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한다는 것은 분명 그 사람의 일생에 있어 경험해보지 못한 기쁨이자 축복일 겁니다. 하지만 무조건 행복하기만 할까요? 시시각각 변하는 몸의 변화와 오락가락하는 기분, 그중에서도 제일 큰 부분은 이제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점이겠죠.
이 영화의 감독도 이 점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모든 여성은 임신한다는 것과 엄마가 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고 그것을 영화에서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개봉 당시 전 세계 언론과 평단을 사로잡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입니다.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에바(틸다 스윈튼 분)는 여행지에서 프랭클린(존 C. 라일리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피임 없이 하룻밤을 보낸 에바에게 뜻하지 않게 아이가 생기죠. 이에 프랭클린과 결혼한 에바는 한 곳에 정착해 살게 됩니다.
원치 않던 아이였기 때문일까요? 열 달 후 아들 케빈이 태어났지만 에바는 어쩐지 ‘모성애’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조금 자라서는 말을 듣지 않는 등 이유 모를 반항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이상한 점은 오직 에바 앞에서만 그런 행동을 보인다는 겁니다. 처음엔 단순히 그 나이 또래 아이가 하는 투정이라 생각하고 의무감에 아이에게 먼저 다가갔지만 점점 도를 넘는 행동에 지쳐가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그런 에바를 이해하지 못하죠.
세월이 흘러 에바에겐 케빈의 여동생 실리아(애슐리 게라시모비치 분)가 생겼고, 케빈과는 다르게 애교 넘치고 순한 실리아에게 관심과 애정을 더 쏟게 되는데요. 청소년이 된 케빈(에즈라 밀러 분)은 실리아를 챙겨주는 척하며 동생이 좋아하는 반려동물 기니피그를 죽이거나 동생의 한쪽 눈을 멀게 하는 잔혹한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실리아의 실명이 기폭제가 되어 부부 사이의 갈등은 폭발하게 되고 급기야 에바는 이혼까지 결심합니다. 실리아를 케빈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거였죠. 부부간의 대화를 우연히 케빈이 들었고 이후 이들 가족에겐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케빈은 16세 생일 직전 계획된 범죄를 저지릅니다. 에바가 집에 없는 사이 동생과 아빠를 활로 쏘아 죽이고 미리 사둔 자전거 자물쇠로 학교 체육관을 폐쇄합니다. 이후 체육관에 있는 학생들 역시 마치 사냥하듯 활로 쏘아 죽이기 시작하죠.
이로 인해 케빈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고 홀로 살아남은 에바는 이때부터 ‘살인자의 엄마’라는 꼬리표를 달고 마을에서 온갖 무시와 폭력을 당하며 죄인처럼 살아갑니다.
2년 후 케빈이 성인 교도소로 이감되기 전 에바와 만나는데요. 이때 에바는 처음으로 케빈에게 “대체 왜 그랬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케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라는 애매한 대답으로 영화는 끝을 맺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케빈이 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는데 끝까지 그 대답은 들을 수 없었죠. 포털 사이트에 이 영화를 검색하면 ‘결말 해석’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뜰 정도로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요.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긴 어려우나 영화가 끝나고 든 생각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케빈이 에바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관심을 끌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케빈은 관심을 끌기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대신 그 반대되는 행동을 했던 거죠. 마치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일부러 못된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의 심정 같은 것이랄까요. 이후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동생 실리아가 태어나자 질투에 못 이겨 잔인한 행동을 취하고 종국에는 동생과 아빠를 모두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죠.
둘째, 첫 번째 이유와는 정반대로 에바에 대한 증오심이 지나쳐 벌인 일이다. 에바는 케빈을 임신한 것부터 원치 않았으며 케빈은 자라는 내내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에바는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하지만 케빈의 말을 들어보면(어릴 적 장난감으로 놀아주려는 에바에게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만 그냥 나에게 익숙한 거야”라는 말을 한다) 엄마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의무감 때문에 자신을 대한다는 걸 어릴 적부터 느꼈다고 볼 수 있죠. 이에 점점 분노가 쌓여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죠.
어쩐지 쓰다 보니 ‘사랑과 증오는 한 끗 차이’라던 문구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