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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Dec 14. 2020

철부지들의 마녀사냥…선생님은 그렇게 성추행범이 됐다

영화 '더 헌트'

어느 날 당신의 아이가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나를 만졌어”라고 말한다면, 그런데 당사자인 선생님은 부인하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둘 중 어떤 사람의 말을 믿겠습니까. 아마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아이’의 말을 믿어줄 겁니다. 무의식 속에서 갖는 일종의 ‘믿음’이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사람이라면 당신은 두 가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아이들은 항상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

둘째. 내가 믿는 것이 모두 사실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죠.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이 두 가지가 한 남자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맥주 광고로 익숙한 덴마크의 국민 배우 매즈 미켈슨이 주연인 영화 ‘더 헌트’ 입니다.


우리에게는 맥주 광고로 익숙한 덴마크의 국민 배우 매즈 미켈슨. 영화 ‘더 헌트'에서 주인공 루카스 역을 맡아 묵직한 연기를 보인다.


주인공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는 작은 시골 마을인 자신의 고향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는 선생님이죠. 아이들의 부모도 어릴 적 친구들로 오랜 시간 동안 곁에서 함께해온 사람들입니다.


원생 중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 분)도 자신의 친구 테오(토머스 보 라센 분)의 딸인데요. 그래서인지 좀 더 마음이 가게 됩니다. 종종 집에 바래다주거나 등원을 함께 했죠. 이런 호의에 애정을 느낀 클라라는 자신이 직접 만든 하트와 함께 편지를 써 루카스의 재킷 주머니에 넣어놓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놀고 있던 루카스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죠.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가 다니는 유치원의 원생이자 친구 테오(토머스 보 라센 분)의 딸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 분). 아이가 불러온 사소한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선을 넘는 아이의 행동에 루카스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편지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줘, 입술 뽀뽀는 부모님과 하는 게 좋겠다”라고 말하는데요. 이에 마음이 상한 클라라는 친구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늦게까지 부모님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원장에게 ‘자신이 루카스에게 성추행당했다’라는 뉘앙스가 담긴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의 자세한 묘사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원장은 루카스를 직접 불러 사실관계를 파악하지만 이미 마음속엔 루카스가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죠. 이후 클라라의 부모에게, 다른 원생들의 학부모에게 성추행이 마치 일어난 것처럼 말이 옮겨지게 되고 불과 하루 사이에 루카스는 마을에서 성추행범이 되어버리는데요.


유치원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자친구도, 어렸을 적 친구들도 점점 루카스를 멀리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혼한 전처의 귀에까지 말이 들어가 아들조차 만나지 못하게 되었죠.

  

아이가 한 말에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를 성추행범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유치원 원장 선생님(좌).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여러 사람에게 그가 성추행범임을 믿게 한다.


나중엔 클라라가 자신이 했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클라라를 ‘피해자’로 치부해버린 부모와 친구들은 되려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내는 아이들의 특성 때문에 새로운 진술도 점점 들려오는 상황에서 경찰의 조사까지 받게 되었죠.


어쨌든 없는 사실이니 결국 무죄로 풀려나게 되는데요. 일단 아이들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고, 루카스가 집 지하실로 데려가 성추행을 했다고 하는데 결정적인 건 루카스의 집엔 지하실 자체가 없던 거죠. 이는 모두 아이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임을 인정받은 겁니다.

  

경찰 조사로 인해 무고함이 드러났지만 마을 사람들의 시선과 폭력으로 인해 일상이 파괴된 루카스. 매즈 미켈슨의 눈빛과 표정에서 그의 변해가는 심리 상태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무고함이 드러나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직도 루카스를 ‘성추행범’이라 여기는데요. 자신에게 ‘범죄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육체적인 폭력이 있었죠. 이들은 끝내 루카스의 무고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한 집단의 잘못된 믿음이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수작인데요. 현대 사회에서, 특히 SNS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마녀사냥’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루카스를 연기한 매즈 미켈슨의 눈빛과 표정에 주목해 보신다면 누구보다도 남자답고 성실한 삶을 살았던 한 남자가 ‘마녀사냥'을 당하게 되면서 변해가는 심리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매즈 미켈슨의 묵직한 연기로 그해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동시에 받는 영광을 얻기도 했는데요. 그 명성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봐도 훌륭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최근에 봤던 어떤 영화들 보다 좋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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