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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Dec 07. 2020

그날의 그 키스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9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한 편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영화는 바로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하트비트’ 였는데요.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영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연출한 작품들도 모두 전 세계 주요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는 등 놀라운 성적을 보여줬습니다. ‘로렌스 애니웨이’나 ‘탐엣더팜’, ‘마미’, ‘단지 세상의 끝’으로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점점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했죠.


국내에도 아주 두꺼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31세의 젊은 영화감독이 새 영화를 찍었다고 하여 오랜만에 극장에 가봤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온전히 나 자신이 되어 만든 나와 가장 닮은 영화다”라고 전했는데요. 그와 닮은 영화는 어떤 색을 담고 있을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티아스와 막심’ 입니다.

  

(왼쪽부터) 맷 역을 맡은 가브리엘 달메이다 프레이타스와 막스 역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자비에 돌란. 친구 동생의 과제를 도와주기 위해 카메라 앞에 앉았다.


로펌에 다니는 맷(가브리엘 달메이다 프레이타스 분)과 바텐더로 일하는 막스(자비에 돌란 분)는 어렸을 때부터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절친한 친구입니다. 같이 어울렸던 몇 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모여 맥주도 마시고 게임도 하는 등 소소한 우정을 쌓고 있죠.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네 별장에 모였습니다. 웃고 떠드는 와중에 갑자기 친구의 동생이 과제를 도와 달라며 부탁하죠. 영화학도였던 동생의 과제는 짧은 단편 영화를 찍는 것이었습니다. 맷과 막스는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돕겠다 했다가 시나리오를 보고 당황했는데요. 두 사람이 진한 키스신을 촬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걸 미리 얘기 안 할 수 있느냐 따졌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배우 역을 해주기로 했던 동생의 친구들이 사정상 오지 못해 어떻게든 촬영해야 했죠.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 안에 돌아가는 카메라와 그 앞에 앉은 두 사람.


동생의 연출로 작품성 있는 단편 영화가 나왔지만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엔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는 날이면 일부러 피하거나 서로의 존재에 대해 전과 다르게 의식하게 되죠. 그들이 느끼는 이 감정은 어떤 종류일까요. 또 두 사람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요.


맷(좌)과 막스(우) 그리고 그의 친구들(뒷편). 어렸을 때부터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로 남아 있다.


‘어떤 우정은 청춘만큼 흔들리고 사랑보다 강렬하다’라는 영화의 소개 문구는 ‘마티아스와 막심’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또 흔들리기도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담아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색감이 참 ‘사랑스럽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특히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인물에게 비치는 장면이 있는데 얼굴을 반쯤 비춘 그 빛과 인물이 연기하는 표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65mm 필름으로 촬영된 것도 그 아름다움에 한몫했다고 볼 수 있죠. 자비에 돌란은 이런 미적 연출에 대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는데요. 그의 천재성이 돋보입니다.


막스(좌)의 오른쪽 뺨에 크고 붉은 흉터가 있다. 이 흉터 속에는 감독의 숨은 의도가 있었다.


자비에 돌란이 직접 연기한 ‘막스’의 얼굴을 보면 오른쪽 눈부터 입까지 크고 붉은 흉터가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그 흉터가 어떤 이유로 생겼는지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막스’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저 흉터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 감독이 원하는 목적에 따라 연출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감독은 이 흉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막스’의 친구들이 흉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흉터에 대한 일이 일어났을 때 함께 했을 것이고 함께한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잊었을 거라고 본다. 그의 얼굴에는 나의 속마음이 담겨 있다. 피를 흘리고 있는 흔적, 일종의 상처. 지난 몇 년간 친구들이 존재만으로도 있게 만들었던 나의 불안감이나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찍었다 하면 주목을 받는 이 천재 감독의 ‘마티아스와 막심’ 역시 제72회 칸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되었는데요. 이쯤 되면 감히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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