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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an 24. 2021

수혈 거부한 소년에 내린 판결…옳은 결정이었을까

영화 '칠드런 액트'

저는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판사나 변호사를 보면 입장을 바꿔봅니다. 내가 내린 판결이 혹시 잘못되었다면 혹은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의뢰인을 만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데요.


흔히 법조인의 자질로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법조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나의 판단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180도로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올바른(어느 것이 올바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 ‘칠드런 액트'에서 존경받는 판사 피오나 메이를 연기한 엠마 톰슨.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한 법조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존경받는 판사 피오나 메이(엠마 톰슨 분)가 한 사건을 맡게 되면서 사건 당사자의 삶은 물론 자신의 삶까지 흔들리게 되는데요.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베테랑 판사 피오나는 업계에서 평판이 좋습니다. 감성보다는 이성이 앞서고 다년간의 사건 케이스를 바탕으로 최대한 중립적인 판결을 내리려 노력하는데요. 이를 위해 당연히 일 중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 사건에 대해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해야 하니까요.


피오나에게는 대학교수인 남편 잭 메이(스탠리 투치 분)가 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지금껏 결혼생활을 유지해왔지만 점점 일에만 파묻혀 사는 아내에게 지쳐갑니다. 함께 하던 취미생활도, 부부관계도 심지어는 대화도 제대로 나눠본 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죠. 이런 잭은 어느 날 아내에게 폭탄선언을 합니다.


“아무래도 나 바람피울 것 같아"


피오나의 남편 잭 메이 역을 맡은 스탠리 투치. 아내의 무심함에 지친 잭은 어느 날 폭탄선언을 한다.


피오나 입장에서는 일과 가정의 중립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말을 듣고는 도리어 충격에 휩싸입니다. 부부가 본격적으로 대화하려는 찰나 피오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역시나 일 관련된 전화였고 피오나가 통화하는 도중에 남편은 짐을 싸서 나가버리죠.


남편에 대한 배신감도 배신감인데 어쨌든 다른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일은 계속합니다. 어제 전화로 들었던 사건이죠. 환자와 병원 간의 소송인데요. 17세 백혈병 환자와 보호자는 종교적인 이유로 치료 중에 꼭 필요한 수혈을 거부하고 있고, 병원 측에서는 수혈만 받으면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환자를 죽게 놔둘 수 없다는 입장이죠.


재판에 들어선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렸습니다. 피오나는 법적 보호자와 병원 측의 입장이 아닌 당사자의 입장을 확인하고 싶었죠. 환자 본인의 의지인지. 치료를 거부했을 때 본인에게 닥칠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 말이죠. 따라서 재판을 휴정하고 이례적으로 당사자를 만나기 위해 병원으로 향합니다.


판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사건 당사자를 찾은 피오나(왼쪽). 17세 백혈병 환자인 애덤 헨리(오른쪽)와 대화하는 장면.


환자의 이름은 애덤 헨리(핀 화이트헤드 분). 그 나이 또래의 장난기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고 종교적인 신념도 확인했지만 수혈을 거부했을 때 죽음 외에 다른 상황. 예를 들어 부작용을 안고 평생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점은 생각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그의 나이가 아직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한한 가능성이 많은 나이라는 것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 겁니다.


짧은 만남을 마친 피오나는 다시 법정으로 돌아와 ‘종교나 자신의 신념보다 생명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후 병원은 애덤에게 즉시 수혈을 했고 애덤은 건강을 되찾아 정상적인 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렇게 한 사건이 끝나가는 줄 알았지만 애덤은 계속 피오나에게 연락을 하고 급기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같이 살겠다고 하는데요. 애덤이 원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17세 백혈병 환자 애덤 헨리 역을 맡은 핀 화이트헤드. 판결로 인해 건강을 되찾았지만 어쩐 일인지 계속 피오나를 찾는다.


제가 이 영화에서 신선하다 생각한 점은 일종의 고정관념을 비틀었다는 점입니다. 먼저 이야기의 주체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점인데요. 우리가 익숙한 스토리는 보통 일 중독인 남성이 있고 당연히(?) 가정에 소홀해 아내를 등한시하고 나중에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식이었는데요. 이 영화는 우리가 아는 스토리에서 남녀의 역할이 바뀌어 있죠.


이는 환자와 병원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을 원하는 환자와 살기를 바라는 병원이라니. 보통 환자와 병원 간의 소송이라 하면 진료가 잘못됐다며 의사에게 소송하는 사건은 많이 봤어도 환자를 살리겠다며 소송하는 병원은 없잖아요.


‘어톤먼트’, ‘체실 비치에서’ 등 현존하는 작가 중 최고로 꼽히는 이언 매큐언이 각본을 맡았고,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의 프로듀서 던컨 켄워시가 제작에 참여한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극을 이끌어가는 피오나 역의 엠마 톰슨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애덤의 존재와 남편의 선언으로 인해 중립으로 점철된 피오나의 삶이 어떤 결말로 이르게 될지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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