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아들을 우리 회사 상전으로 모셨다

— 마케터 아빠와 게이머 아들의 로블록스 유튜브 실험기

by Korea Tiger

옷방 구석에 노트북을 펴고 이력서와 씨름하던 어느 저녁이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내밀었더니, 녀석은 태블릿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표정으로 정체불명의 네모난 캐릭터들이 뛰어다니는 게임에 완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신(神)급 인기를 자랑한다는 '로블록스(Roblox)'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눈에 비친 로블록스는 좀 조잡했다.

그래픽은 어딘가 엉성했고, 게임의 논리는 파편화되어 있었으며, '이게 왜 재미있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저 아이가 저토록 빠져 있는 세상은 대체 어떤 곳일까.


나는 결심했다. 이 낯선 세계로 직접 뛰어들어 보기로.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까다롭고 가장 유능한 파트너를 전격 영입하기로 했다. 다름 아닌 내 아들이다.




1. 로블록스 신입 사원이 된 마흔넷 아빠


"아들아, 아빠랑 같이 로블록스 유튜브 한번 만들어볼까?"

이 한마디에 아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평소엔 "게임 좀 그만해"를 입에 달고 살던 아빠가 직접 게임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녀석 입장에선 아마 우주의 질서가 흔들리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 집에는 기묘한 위계질서가 생겼다.

영상 편집은 내가 맡았지만, 콘텐츠의 핵심인 '재미'와 '플레이'의 주도권은 온전히 아들에게 넘어갔다.

9살 아들이 우리 채널의 최고 콘텐츠 책임자이자, 마흔넷 아빠를 훈련시키는 '사수'가 된 것이다.


라이벌스(Rivals)는 채널을 시작하기 전부터 아들 녀석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가끔 즐기던 게임이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하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실제 제작에 들어가니 문제는 '무브먼트'였다.


내가 예전에 즐기던 FPS는 달리기와 점프가 전부였는데,

라이벌스는 2단 점프는 기본이고 낫을 던져 허공으로 솟구치거나

수류탄을 발아래 터뜨려 하늘로 튀어 오르는 아크로바틱한 기믹이 가득했다.


"아빠, 거기서 낫 던지면 올라갈 수 있어! 아 진짜, 왜 또 떨어져!"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이 안타까움 반, 웃음 반으로 외쳤다.

화면 속 내 캐릭터는 어김없이 맵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조준은 맞는데 몸이 공중에 떠 있질 않으니 총 쏠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들의 지시에 따라 캐릭터를 움직이고 실패할 때마다 같이 깔깔거리며 웃다 보니, 이게 그 어떤 그럴듯한 프로젝트보다 훨씬 더 솔직한 '대화'라는 걸 깨달았다.

아들의 세계에 내가 손님으로 초대된 느낌이었다.


image.png 하나씩 가르침을 받는 아빠




2. 쇼츠 한 방으로 맛본 2만 조회의 짜릿함


채널을 개설하고 아들의 아이디어로 '스킨 케이스(스케)' 나눔 이벤트 쇼츠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업로드한 지 며칠 만에 조회수 1만을 돌파했고, 0명이던 구독자가 순식간에 300명으로 늘었다.


"아빠! 우리 영상 조회수 봐! 대박이야!"


밤늦게까지 태블릿을 붙잡고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을 함께 읽었다.

"이벤트 참여합니다!"라는 참여 메시지부터 "아빠랑 같이 게임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아요",

"저희 아빠도 같이 해주면 좋겠어요" 같은 응원 글들이 줄을 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받는 지지와 격려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아들과 머리를 맞대며 댓글 하나하나에 답글을 달다 보니, 아이는 자기 아이디어가 세상에 닿는 과정을 확인하며 새로운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

그건 조회수보다 훨씬 값진 수확이었다.


image.png 유튜브에서 처음 맛본 성공




3. 실패가 주는 진짜 공부 — 선생님은 아홉 살


하지만 알고리즘은 냉혹했다.

첫 번째 성공에 고무되어 곧바로 두 번째 이벤트를 더 큰 규모로 기획했다.

당연히 잘 될 거라 확신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조회수는 바닥을 기었고 신규 구독자 유입은 뚝 멈췄다.


소위 말하는 '연속 이벤트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나름대로 마케팅 밥을 먹었다고 자부했는데,

아홉 살 유튜버도 아는 알고리즘에 당하고 나니 자존심이 좀 많이 상했다.


낙담한 나를 위로한 건 뜻밖에도 아들이었다.

"아빠, 괜찮아. 원래 게임도 죽으면서 배우는 거잖아. 이번엔 다른 거 해보자!"


아들은 실패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쉬지 않고 던졌다.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것.

어쩌면 내가 일하면서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던 진리를

아홉 살짜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가르쳐 주었다.





4. 구독자보다 소중한 '우리'의 시간


솔직히 말하면 실버버튼 꿈은 접은 지 오래다.

이 바닥은 생각보다 거대한 레드오션이고 우리 실력은 아직 부족하다.

그런데 그게 꼭 실패일까?


휴직 전 나는 늘 바쁜 아빠였다.

퇴근하면 아이는 자고 있었고 주말엔 피곤을 핑계로 아이와 제대로 마주 앉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들이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어떤 유튜버를 흉내 내는지, 언제 가장 크게 웃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우리 부자에게는 가장 좋은 놀이터이자 대화 창구가 되어주었다.

통장 잔고는 불어날 기미가 없지만, 아들과 함께 댓글을 보며 낄낄거리고 다음 영상을 기획하는 이 시간만큼은 어떤 성공 지표로도 환산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아들의 목소리를 경청한다.


"아빠, 오늘은 이 맵에서 스케 이벤트 다시 기획해 보자. 이번엔 진짜 자신 있어!"


우리 채널의 상전이자 최고 파트너인 아들의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기분 좋게 노트북을 열고 화면을 켠다.

1인 기업가이자 아빠인 나의 하루는, 오늘도 아들과 함께 시작된다.



아빠로서 아이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 본 이 경험은, 역설적으로 내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제 아이와의 놀이를 넘어, 내가 가장 잘 아는 진짜 현장의 이야기를 꺼낼 차례다.


회사의 자산이 아닌, 오롯이 내 이름으로 남을 기록들.

5년의 베트남을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하는 과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음 09화 › 회사의 자산이 아닌, 오롯이 내 이름으로 남는 기록들 : 5년의 베트남을 한 권의 전자책으로 압축하기


이전 08화옷방 출근 첫날, 일하는 뇌가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