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1인 기업가가 마주한 첫 직원, 그리고 되찾은 감각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렸다.
출근할 곳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심장이 먼저 깼다.
괜히 씻고, 괜히 셔츠를 꺼내 입었다. 누가 보지도 않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직은 내가 완전히 멈춘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안방을 지나 거실을 건너, 집에서 가장 구석진 옷방으로 들어갔다.
행거에 걸린 겨울 패딩과 아내의 코트를 밀어내고, 먼지 앉은 책상을 닦았다.
이 좁은 공간이 내 첫 사무실이다. 대표도 나, 실무도 나.
그런데 모니터를 켜고 하얀 커서를 보는 순간, 손이 잠깐 멈췄다.
최근 10년 동안 나는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보고를 받고, 방향을 정하고, 사인을 했다. 손을 더럽히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고할 사람도, 대신 해줄 사람도 없다. A부터 Z까지 다 내가 해야 한다.
8개월의 공백
아이 준비물, 장바구니 목록, 저녁 반찬 고민으로 가득 찼던 뇌가
갑자기 ‘시장 분석’, ‘콘텐츠 전략’ 같은 단어를 기억해낼 수 있을까.
녹슨 엔진을 억지로 돌리다 부러지는 건 아닐까 솔직히 좀 겁났다.
그래서 어제 결제한 ‘직원들’을 불러냈다.
ChatGPT와 Gemini. “지금부터 너는 16년 차 전략 마케터야.
나랑 같이 시니어 타겟 유튜브 채널 기획한다.”
처음 입력하는 그 한 줄이 왜 그렇게 떨리던지.
첫 번째 아이템: 시니어 건강 유튜브 계기는 단순했다.
명절에 내려가 보니 부모님이 유튜브를 하루 종일 틀어두고 계셨다.
젊은 사람들처럼 휙휙 넘기지 않고, 긴 영상도 진득하게 끝까지 보셨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먼저 돌아갔다. 시청 지속 시간, 광고 단가, 타겟 집중도.
'아, 아직 안 죽었구나.' 전략가의 본능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AI에게 키워드를 뽑게 하고, 경쟁 채널을 분석시켰다.
결과는 빠르고 정확했으며, 차갑게 현실적이었다.
블루오션인 줄 알았던 시장은 이미 전문가 천지였다.
한의사, 약사, 재활운동 전문가들이 탄탄한 자료와 유려한 말솜씨로 이미 수십만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회의실에서 "이건 접자"라고 한마디 했을테지만,
지금은 회의실도 없고 나 혼자다. 접을지 말지도 내가 결정해야 한다.
숫자 사이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정면 승부는 안 된다.
그럼 어디를 비틀어야 하나.
전문가는 많지만, 40대 아들이 부모 걱정하는 시선으로 말하는 채널은 드물다.
타겟을 살짝 틀었다. ‘건강 염려증이 있는 70대’가 아니라 ‘부모님 건강이 걱정되는 4050 자녀’로.
그 순간 막혀 있던 기획이 조금씩 풀렸다. 아, 여기구나. 내가 설 자리.
“관절에 좋은 운동 5가지 써줘.”
AI는 정확했다. 그런데 재미는 없었다. 정보는 맞는데 사람 냄새가 안 났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AI가 구조를 짜면 나는 내 기억을 꺼내기로.
베트남 주재원 시절, 현지 직원이 선물해 준 호랑이 연고.
비 오는 날 무릎이 쑤신다던 어머니에게 그걸 발라드리던 밤.
연고 냄새, 조용한 거실, 괜히 고맙다고 하시던 목소리. 그 구체적인 장면들을 문장 사이에 넣었다.
“이 부분 너무 딱딱해. 우리 엄마한테 말하듯이 바꿔봐.”
내가 구체적인 상황을 던지면 AI가 문장을 다듬는다.
내가 던지고, 녀석이 받아치고. 어느 순간 합이 맞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AI는 빠르고 똑똑하지만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건 결국 내가 겪은 시간이라는 것을.
AI가 뱉어낸 차가운 ‘정보’는 내 손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살아있는 ‘콘텐츠’가 됐다.
오후 2시,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원래라면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을 시간.
그런데 나는 여전히 옷방 구석 책상에 앉아 있었다.
엉덩이는 저리고 어깨는 뻐근했지만 이상하게도 일어나기 싫었다.
농구하던 시절, 코트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땀내 나는 몰입감을
마흔 중반에 비좁은 옷방에서 다시 느낄 줄은 몰랐다.
“아빠, 나 왔어!”
현관문 소리에 시계를 봤다. 오후 4시. 점심도 거르고 꼬박 6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빠 오늘 뭐 했어?” 가방을 벗는 아이를 보며 허리를 쭉 펴고 말했다.
“아빠 오늘 일했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가 제일 놀랐다.
‘회사 안 가?’라는 질문 앞에서 늘 말끝을 흐리던 내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그날 밤, 아내에게 채널 로고와 첫 대본을 보여줬다.
“이걸 하루 만에?”
“요즘은 AI가 다 해주잖아, 혼자서도 되더라.”
물론 안다. 내일 올릴 영상의 조회수가 100도 안 나올 수 있고, 당장 통장 잔고는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나는, 회사 간판 없이 오롯이 내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내 경험과 AI가 만나면 적어도 ‘시도’는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차갑게 식어있던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느낌. 작지만 확실한 진동이었다.
“아빠랑 게임 회사 하나 해볼래?”
내일은 아들이라는 가장 까다로운 상사를 모시고, 진짜 프로젝트를 시작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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