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끝나는 건 아닐까?' 멈춤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불안
베트남과 일본을 오갔던 그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여행용 캐리어를 베란다 창고 깊숙이 밀어 넣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돌아온 일상. 처음에는 그 고요함이 여전히 달콤했다.
알람 없이 눈을 뜨는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와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소파에 누워 느끼는 나른함. 직장 생활 16년 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였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토록 달콤했던 휴식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짧았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가자, 나를 지탱해주던 '쉼'이라는 명분이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했다.
몸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해졌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시속 200km로 달릴 때보다 더 무겁게 명치를 짓눌러 왔다.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을 낸 건, 아주 현실적이고 차가운 두 글자였다.
현실
가장 먼저 나의 평화를 깬 건 스마트폰 뱅킹 앱이었다.
매달 25이면 어김없이 울리던 월급 입금 알림. 그 규칙적인 신호음이 끊긴 지 반년이 넘어가자, 통장의 수위는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었다.
월급쟁이로 살 때는 몰랐다. 그저 숨만 쉬고 사는데도 이렇게 많은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관리비, 보험료, 통신비, 그리고 세 식구의 식비까지.
고정지출이라는 녀석들은 내가 회사를 쉬든 말든 상관없이 꼬박꼬박 내 통장에 빨대를 꽂고 있었다.
거기에 ‘아빠의 욕심’이 기름을 부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평소엔 신경 쓰지 못했던 아이 교육에 눈이 갔다.
“우리 애도 영어 학원 하나 더 보내야 하지 않을까?” “농구도 하고싶어 하는데..”
아내와 상의 끝에 학원 한두 개를 더 등록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결정들이 가뜩이나 얇아진 육아휴직 급여라는 방어막을 얼마나 빠르게 뚫어버릴지.
어느 주말, 가족들과 마트에 갔을 때였다.
카트에 물건을 담다가 무심코 과일 코너의 가격표를 보았다. 제철 과일 한 상자에 3만 원.
예전 같으면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하며 호기롭게 담았을 금액이다.
그런데 그날은 나도 모르게 카트를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이걸 담아도 되나? 이번 달 생활비가 얼마나 남았더라?’
과일 상자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 짧은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단순히 돈을 못 쓰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내 가족에게 ‘망설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월급이 멈추니, 나의 자존감도 함께 멈춰버린 것 같은 기분.
그날 나는 처음으로 ‘가난해질 수도 있다’는 공포를 실감했다.
지갑이 얇아지니, 자연스럽게 발이 묶였다.
나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후배들에게 밥 사주는 걸 좋아했고,
친구들과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이번엔 형이 낼게"라고 말하는 것이 나의 낙이었다.
하지만 휴직이 길어지면서 나는 점점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갔다.
단순히 술값이나 밥값이 부담스러워서가 아니었다.
내가 정말 피하고 싶었던 건, 그 자리에 나가서 겪어야 할 ‘설명’의 시간이었다.
“아직도 쉬어? 복직은 언제 해?” “회사 상황은 괜찮고? 돌아가면 자리는 있어?”
사람들은 걱정해서 묻는 말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뾰족한 심문처럼 들렸다.
반년 넘게 쉬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내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 구차하게 느껴졌다.
마치 잠시 쉬는 전문직이 아니라,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실직자처럼 비칠까 봐 겁이 났다.
SNS 속 동기들은 승진을 하고, 해외 출장을 가고, 멋진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치고 나가는데, 나는 집에서 분리수거 날짜나 챙기고 있다는 자괴감. 그 격차를 확인하는 게 두려워 나는 전화기를 뒤집어 놓았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던 ‘핵인싸’ 법인장님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동굴 속으로 숨어드는 중년의 남자만 남아 있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깊은 무기력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처음엔 책도 읽고 생산적인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불안이 덮쳐올수록 나는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도피처를 찾았다.
가장 손쉬운 도피처는 게임기와 유튜브였다. 의자와 한 몸이 되어 몇 시간이고 비디오 게임 패드를 붙잡고 있었다. 화면 속의 나는 용사가 되어 몬스터를 때려잡고, 화려하게 레벨 업을 했다.
그 가짜 성취감에 취해 있을 때만큼은, 통장 잔고도, 복직 걱정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끄고 검은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치는 순간,
마법은 풀리고 비참한 현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나이 마흔 중반에, 대낮에 혼자 거실에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어두워진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공허함이 가슴을 후벼 팠다.
오후 내내 유튜브 쇼츠를 넘기며 킬킬거렸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뇌가 텅 비어버린 느낌. 나는 쉬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갉아먹으며 시간을 태우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아파트 단지로 나가 캐치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아빠랑 노는 게 좋아서 해맑게 웃으며 공을 던지는데, 나는 아이를 보고 웃으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딴생각뿐이었다.
‘이 평화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당장 다음 달 카드값은 어떻게 메꾸지.’ ‘복직이 안 되면, 나는 사회에서 영영 도태되는 건 아닐까.’
글러브에 공이 ‘퍽’ 하고 꽂힐 때마다, 둔탁한 불안감이 심장을 때렸다.
몸은 아이 곁에 있었지만, 영혼은 불안이라는 지옥을 헤매고 있었다.
불안이 목 끝까지 차올랐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식탁에 앉아 가계부를 정리하던 아내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툭, 말을 던졌다.
“여보, 우리 이제 진짜 어떡하지? 잔고가 바닥이 보이네.”
나는 그저 “괜찮아, 좀 아껴 쓰면 되지”라는 위로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침묵하던 아내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정 힘들면... 내가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전업주부로 살며 가죽공예를 배우고 아이를 돌보는 데 전념했던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나를 대신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겠다는 말을 꺼내게 만들다니.
그건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나에게 날아온 ‘레드카드’였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경고장.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슨 소리야. 내가 있는데. 그런 걱정 하지 마.”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큰소리쳤지만,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소파에 누워 느끼는 이 우울감과 불안은 단순한 감정 놀음이 아니었다.
이건 우리 가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정신 차리자. 나는 가장이다.’
더 이상 멍하니 게임 레벨이나 올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됐다.
돌아갈 회사가 예전 같지 않다면, 길이 막혔다면, 다른 길을 뚫어야 했다.
아니, 길이 없으면 내가 길을 만들어야 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먼지 쌓인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들어가던 구인구직 사이트 대신, 나의 이 막막함을 해결해 줄 낯설고 새로운 키워드를 검색창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나를 그 깊은 무기력의 늪에서 건져 올린 건, 달콤한 휴식이 아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 그리고 우연인 듯 운명처럼 만난 ‘인공지능(AI)’이라는 녀석이었다.
다음 6화 <나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복직이라는 안전한 길 대신, 스스로 야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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