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공의 열정과 골프공의 침착함 사이에서
가족과 함께한 여름이 지나고, 나는 다시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여행의 들뜸이 가라앉자, 잠시 잊고 있던 불청객이 찾아왔다.
‘생각’이었다.
몸은 편해졌는데 머릿속은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남들은 다 뛰고 있는데 나만 멈춰 있는 건 아닐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 그 지독한 완벽주의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잡념을 떨치기 위해 컴퓨터 앞이 아닌 운동장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나는 내 인생이 왜 그토록 힘들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농구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짧지만 엘리트 선수 생활을 경험했다.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일까. 대학교에서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심지어 그 뜨거운 베트남에 있으면서도 나는 늘 코트 위에 있었다.
농구는 내가 제일 잘하는 운동이자, 나를 증명하는 무대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그 감각. 나는 그 치열함을 사랑했다.
휴직 기간, 시간이 많아진 나는 다시 농구화 끈을 조여 맸다.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을 땀으로 씻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몸은 40대 중반이었고, 마음만 고등학교 시절 그대로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오랜만에 나간 경기에서 상대방과 부딪혔고, ‘억’ 소리와 함께 갈비뼈에 금이 갔다.
숨 쉴 때마다 전해지는 통증에 후회하면서도, 나는 깁스를 풀자마자 다시 코트로 나갔다.
“아빠, 오늘 아빠들 시합 있는 거 알지?”
세 달 뒤, 아이가 다니는 농구 교실에서 학부모 시합이 열렸다.
아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앞섰을까.
나는 또다시 전력 질주를 했고, 상대방 무릎에 허벅지를 강하게 부딪쳤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심한 타박상이었다.
절뚝거리며 집에 돌아오는 길, 아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당신은 왜 뭐든 하면 그렇게 끝을 보려고 해?”
그 말이 뼈아프게 들렸다. 아프면서도 코트에 서면 정신을 못 차리고 뛰어드는 나.
그건 단순히 농구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내 인생을 ‘농구하듯’ 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부딪치고, 다치더라도 결과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삶.
멈춰 있는 이 시간조차 나는 무언가를 격렬하게 해내려 애쓰고 있었다.
농구 때문에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었을 때, 나를 위로해 준 건 의외로 골프였다.
베트남 주재원 시절, 비즈니스를 위해 반강제로 시작하면서 농구와 멀어지게 만들었던 애증의 운동.
여전히 스코어는 100타를 넘나드는 ‘백돌이’ 신세지만,
휴직 기간 동안 나는 아파트 커뮤니티 연습장을 피난처로 삼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 아무 생각 없이 7번 아이언을 잡았다.
처음엔 골프채도 농구공 잡듯 꽉 쥐었다. 멀리 보내고 싶었고, 잘 맞추고 싶었다.
그러자 공은 여지없이 오른쪽으로 휘어버렸다.
“회원님, 힘 좀 빼세요. 채를 그냥 툭 던지세요.”
레슨 프로의 말은 운동 조언이 아니라 인생 조언처럼 들렸다.
이기려고 덤비면 망한다. 힘을 주면 휘어진다. 그 단순한 진리를 몸으로 익히는 데 한참이 걸렸다.
어느 날이었다. 아무런 욕심 없이, 그냥 채 무게만 느끼며 툭 휘둘렀다.
‘찰싹-’
손끝에 전해지는 느낌이 달랐다.
공이 쇳덩이에 맞는 둔탁한 느낌이 아니라, 마치 찹쌀떡이 붙었다 떨어지는 듯한 찰진 손맛.
내가 힘을 쓴 게 아닌데, 공은 그 어느 때보다 곧고 멀리 날아갔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나는 연습장에 살다시피 했다.
친구, 선배, 후배들과 필드에 나가서도 예전처럼 스코어에 목숨 걸지 않았다.
잔디를 밟고, 바람을 느끼고,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그 시간 자체가 좋았다.
농구 코트에서는 상대를 이겨야 스트레스가 풀렸는데, 골프장에서는 나를 내려놓아야 스트레스가 풀렸다.
땀 범벅이 되어 샤워를 하고 나오며 거울을 봤다.
갈비뼈는 욱신거리고 허벅지는 시퍼렇게 멍들었지만, 표정은 개운해 보였다.
나는 두 가지 운동 사이에서 방황하며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지난 5년, 아니 40년 평생을 나는 농구 경기하듯 살았다.
숨 쉴 틈 없이 달리고, 부딪치고, 다쳐야만 ‘열심히 살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인생은 4쿼터 내내 전력 질주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힘을 빼고 클럽의 무게에 내 몸을 맡길 때, 공은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날아간다는 것을.
“힘 좀 빼세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그 주문을 나는 이제 조금씩 실천해 보려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매번 골을 넣지 못해도 괜찮다.
가끔은 헛스윙을 해도, 동반자들과 웃으며 다음 홀로 걸어가면 그만이다.
7번 아이언이 내 손바닥에 남겨준 그 찰진 감각을 기억하며,
나는 내 마음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을 ‘툭’ 하고 풀어버렸다.
그렇게 몸을 움직여 땀을 쏟고 나니, 비로소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멈췄다.
불안은 땀방울과 함께 증발했고, 나는 다시 오늘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다.
이제 몸과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충분히 비워냈고, 힘을 빼는 법도 배웠다.
그럼 이제 정말 괜찮아진 걸까?
아니,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몸은 편해졌는데, 휴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또 다른 종류의 공포가 나를 찾아왔다.
이번엔 ‘내가 쓸모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아주 현실적이고 차가운 공포였다.
다음 5화 <잘 쉬고 있는데 불쑥 찾아온 도태 공포>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닐까?" 멈춤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불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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