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을 떼고 보니 비로소 들린 가족의 웃음소리

베트남과 일본, 쉼표를 위해 떠난 한 달의 기록

by Korea Tiger

주재원 시절, 나에게 베트남은 전쟁터였다.

5년 동안 나는 그곳에서 아빠나 남편이기보다, 법인장으로 살았다.

현지 직원 백여 명의 생계가 내 어깨 위에 있었고, 실적 압박은 늘 숨통을 조였다.

하루하루를 버텨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때의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든 거대한 일터였다.


휴직 3개월 차.

나는 다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는 서류 가방 대신, 아이의 손을 잡고였다.


20250807_111018.jpg 항상 설레는 여행




1. 살던 곳에 ‘놀러’ 간다는 것의 해방감


3주간의 베트남 여행.

우리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를 에어비앤비로 잡았다.

익숙한 현관문, 익숙한 엘리베이터 소리.

공간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은 완전히 달랐다.


예전 같으면 새벽같이 일어나 서류 가방을 들고 택시에 올랐을 시간.

이번엔 수영복부터 챙겼다.

아내는 오랜만에 만나는 현지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빴고,

나는 아이의 전담 놀이 파트너가 되었다.


아파트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농구 골대에 공을 던졌다.

근처 쇼핑몰 오락실에서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게임을 하던 시간은

주재원 시절엔 상상도 못 했던 장면이었다.


가장 크게 느껴진 건 해방감이었다.


예전엔 휴일에도 핸드폰이 한 번 울리면 가슴이 내려앉았다.

본사 메일은 없는지, 법인에 무슨 일은 없는지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지금은 달랐다.


기다리는 연락도, 결정을 요구하는 서류도 없었다.

워터파크에서 아이 웃음소리를 들으며 물을 맞는 순간,

내 안에 쌓여 있던 긴장이 천천히 풀리는 게 느껴졌다.


주재원 시절엔 접대 수단이었던 골프도 이번엔 달랐다.

아내와 친한 친구 부부와 함께한 라운딩.

스코어보다 중요한 건 카트에서 나누는 쓸데없는 농담들이었다.

그날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 그냥 베트남에 계속 살고 싶어.”


그 한마디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미안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올라왔다.

아이에게 베트남은 이제 ‘아빠를 빼앗아간 나라’가 아니라

‘아빠랑 마음껏 놀 수 있는 나라’가 된 것 같았다.




20250709_122537.jpg 영화에서만 보던 호그와트

2. 해리포터와 온천, 그리고 사슴의 도시


베트남에서 에너지를 채운 우리는 곧바로 일본 오사카로 향했다.

해리포터에 푹 빠진 아들과 아내를 위해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곳을 골랐다.


날씨는 숨이 막힐 만큼 더웠다.

그래도 맛집 앞에서 줄을 서는 시간,

아이 손에 캐릭터 굿즈를 쥐여주는 순간마저 즐거웠다.


누군가에겐 고된 노동일 이 모든 여행 준비가

나에게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주는 새로운 프로젝트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나라(奈良)시에서 만난 사슴들이었다.

공원을 가득 메운 사슴들 사이에서

아이는 겁을 내면서도 웃으며 과자를 건넸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동안 이런 표정들을 놓치고 살았을까.’


여행의 끝은 료칸에서의 하룻밤이었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잘 차려진 정갈한 가이세키 요리를 맛보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5년의 주재원 생활과

본사 복귀 후 남아 있던 상처들이

뜨거운 수증기와 함께 조금씩 흩어지는 것 같았다.


가족과 둘러앉아 나누는 별것 아닌 대화들.

그 평범함이 휴직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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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 일본 여행


3. 행복한 낭비가 남긴 것


베트남과 일본을 오간 이 긴 여정.

누군가는 철없는 선택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육아휴직 급여 250만 원으로 버티는 상황에서

그 몇 배에 가까운 돈을 여행에 썼으니 숫자로 보면 실패한 투자다.


하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서

돈보다 귀한 걸 다루는 법을 배웠다.

주재원 시절의 나는 통장 숫자를 늘리기 위해

내 시간과 가족의 웃음을 담보로 잡았다.

숫자가 늘면 행복도 같이 늘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숫자는 늘었고, 가족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쓴 건 돈이 아니라

지난 5년 동안 쌓아둔

가장으로서의 미안함을 갚는 비용이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여덟 살 여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비행기 티켓으로 산 건 좌석이 아니라

아이 기억 속에 남을 ‘아빠와의 시간’이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성과급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인생의 커리어였다.


나는 이 행복한 낭비를 통해

비로소 나 자신을 조금 용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

내 자리가 어디인지 다시 확인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잠든 아내와 아이를 보며

나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엔진을 끄고 멈춰 있던 8개월.

사회적인 속도는 제로였지만

마음의 무게는 시속 200km로 달릴 때보다 더 단단해져 있었다.


여행은 끝났고

다시 현실의 시간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겁이 나지는 않았다.


충분히 쉬었고, 충분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평화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비워낸 자리에는 결국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게 된다.

내 인생을 다시 움직이게 할

‘가속의 도구’를 만나기 전,

나는 먼저 몸에 남아 있던 완벽주의부터 털어내야 했다.


가족과 함께한 여름이 지나고

나는 다시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몸은 편해졌지만 머릿속은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컴퓨터 앞이 아니라

운동장으로 향했다.

농구공을 던지고,

7번 아이언을 휘두르며

마흔 중반에 처음으로

‘힘을 빼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음 4화 < "힘 좀 빼세요"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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