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관성, 8개월의 멈춤

돌아온 곳에 ‘나의 자리’는 없었다

by Korea Tiger

시속 200km로 달리던 시간


베트남 호치민의 오후는 늘 똑같았다.

덥고, 끈적하고, 숨이 막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열기가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창밖 도로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들은 끝없이 흐르는 강물 같았고,

그 멈추지 않는 흐름이 내 하루의 리듬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5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진한 색’으로 살았던 시간이었다.


나는 그냥 회사에 다닌 게 아니었다.

무언가를 키우고, 굴리고, 무너지지 않게 붙잡는 일을 했다.

직접 시장을 뛰고, 사람을 만나고, 숫자가 보이지 않을 땐 ‘감’을 믿고 질러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그걸 결과로 증명해 냈을 때,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짜릿함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시속 200km로 달리는 경주마였다.

결정도 빨랐고, 실행도 빨랐고, 결과도 바로바로 돌아왔다.

하나가 해결되면 다음 문이 열리고, 그 문을 넘으면 더 큰 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버티게 해준 건 ‘믿음’이었다.

내 판단을 지지해 준 본사의 리더, 내 편이 되어준 동료들.

밤늦게까지 회의하고, 부딪치고, 언성을 높이다가도 일이 끝나면 웃으며 맥주잔을 부딪치던 사람들.

그 치열함이 곧 내 삶이었다.

멈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멈출 이유를 못 느꼈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땀을 쏟고 마시는 타이거 맥주 한 캔처럼,

“해냈다”는 기분은 달콤했고 그 맛은 자꾸만 다음을 재촉했다.


그래서 5년 임기가 끝날 때, 나는 자연스럽게 기대했다. ‘이제는 더 큰 무대에서, 더 큰 일을 하게 되겠지.’

내가 했던 방식이 본사에서도 통할 거라고, 나도 모르게 그런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horses-430439_1280.jpg 앞만보고 달리기만 하던 경주마




멈춰버린 출근, 사라진 내 자리


인천공항의 공기는 차가웠다.

그 서늘함이 단순히 날씨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5년 만에 다시 출근한 본사.

로고도, 복도 냄새도, 엘리베이터 도착음도 모든 게 익숙했다.

하지만 공기는 달랐다. 내가 알던 그 회사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느낀 건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베트남에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본사의 지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내가 믿고 따르던 리더들은 떠났고, 밤을 지새우던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나를 잘 몰랐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해외에 오래 있다가 돌아온, 낯선 사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자리가 없었다.


"일단 여기 앉아 계시면 됩니다. 곧 발령 공지가 있을 거예요."


임시 자리였다. 팀도 없고, 역할도 없고, 당장 해야 할 일도 없는 자리.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내가 하는 일이라곤 메일함을 습관처럼 새로고침하고,

이미 지난 문서들을 읽는 척하며 모니터를 응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회의도 없고, 판단할 일도 없고, 제 결정이 필요한 일도 없었다.

그 조용한 공간에서는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베트남에서는 1분이 아까워 발을 동동 굴렀는데, 여기서는 1분이 한 시간처럼 늘어졌다.


어제까지는 수많은 사람을 움직이던 장수였는데,

하루아침에 무기도 없이 빈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기분.

그 모욕적인 평온함이 생각보다 깊게, 그리고 오래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무기력이라는 이름의 청구서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매일 아침 출근길,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빠르게 달리던 경주마가 아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제자리를 서성이는 사람, 연료가 다 떨어진 채 관성으로만 굴러가는 낡은 트럭 같았다.

제일 아픈 건 이것이었다.


회사는 너무나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내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내가 들어갈 틈이 없구나.” 이 사실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5년 동안 쏟아낸 내 시간과 열정이, 본사에서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 있었다.

내가 만든 성과도, 관계도, 여기서는 ‘지금’이 아니라 ‘옛날이야기’로 취급받는 느낌이었다.


허무함은 곧 무기력으로 바뀌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아이에게 웃어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매일매일 피를 흘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이미 바닥까지 소진되어 있었다는 걸.

5년 동안 쉼 없이 달린 대가가, 이제야 ‘번아웃’이라는 청구서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육아휴직, 살기 위한 급브레이크


어느 날 밤, 어두운 거실에 앉아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더는 안 되겠다.”


그건 멋있는 결심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멈춰야 한다는,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이대로 가면 회사원으로서의 나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아빠로서의 나, 남편으로서의 나, 그리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망가질 것 같았다.


그래서 육아휴직 서류를 썼다. 도망치듯이, 하지만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한창 일할 나이에 쉬면 커리어는 어떡해?”
“복직해도 자리가 없을 수도 있어.”

나도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걱정을 받아낼 체력이 없었다.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나중에는 멈추는 법 자체를 잊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휴직 승인이 났던 날, 짐을 챙겨 회사 밖으로 나오며 뒤를 돌아봤다.

회사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너 없어도 된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그렇게 나는 5년의 관성을 끊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20250223_084642.jpg 육아휴직을 결정한 날의 나




멈춰버린 시계 속으로


집으로 돌아온 첫날.

노트북 전원을 끄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베트남의 뜨거운 태양도 없고, 본사의 차가운 공기도 없는 집.

오랜만에 정말 ‘완전한 고요’가 찾아왔다.


아내는 말없이 내 편이 되어주었고, 아이의 웃음소리는 집 안을 환하게 채웠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찌꺼기처럼 남는 게 있었다.


불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멈추니까 비로소 들리는 불안이었다.

달릴 때는 들리지 않았다. 달릴 때는 그냥 ‘해야 할 일’만 보였으니까.

그런데 멈춰 서니, 그동안 덮어두었던 질문들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앞으로 뭘 할 건가.’

‘내 커리어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인가.’


8개월.

누군가에게는 짧고,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흔들리는 방황이 될지,

아니면 다시 튀어 오르는 반전의 시작이 될지,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5년 동안 달려온 습관은 생각보다 쉽게 멈추지 않는다는 것.

차를 세운다고 엔진 열기가 바로 식지 않듯, 휴직을 한다고 마음이 바로 쉬어지는 건 아니었다

.

나는 그렇게 ‘멈춘 시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직함도, 조직도, 성과표도 없이 그냥 ‘나’로만 살아야 하는 낯선 시간.

그렇게 내 인생의 2막이, 아주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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