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이 두려운 당신에게

이 글은 ‘도피’의 기록이 아니라 ‘진화’의 기록이다

by Korea Tiger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라고. 속도가 붙었을 때 더 밀어붙이라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5년 동안 정신없이 달리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속도를 잃지 않으려고 버텼다. 멈추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내가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의미 없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본사로 돌아오자 마음이 더 외로워졌다.

일은 있었지만, 내 역할이 뚜렷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오가는데 중요한 결정은 내가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몸도 마음도 점점 바닥이 났다.


그래서 나는 ‘육아휴직’을 선택했다.

겉으로는 선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게는 숨을 쉬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10개월이 시작됐다.

이 글은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다시 버티고, 다시 정리하고, 다시 움직이게 됐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20180113_224844.jpg 버둥거리면 일을 잡으려했던 한 때




8개월: 잠깐 멈춰 서 있던 시간


처음부터 큰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더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넘겼다.

처음 8개월은 정말로 멈춰 있었다.

커리어를 붙잡기보다 아픈 아버지 곁에 있었고, 미뤄뒀던 가족과의 시간을 챙기려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머리를 쓰기보다 몸을 움직였다.

골프를 치고, 농구를 하며 땀을 흘렸다.

숨이 차오르는 느낌, 몸이 먼저 반응하는 감각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그렇게 지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도 느꼈다.


누군가는 이런 시간을 ‘경력 단절’이라고 말한다.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했다.

쉬고 있는 동안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그걸 바라보는 나는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닐까.”


이 두려움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이 멈춤은 게으름이 아니었다.

그동안 쌓인 피로를 빼내는 시간이었고, 다시 시작하기 전에 숨을 고르는 시간이기도 했다.


멈추니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억지로 버텼는지, 얼마나 ‘성과’에 매달려 있었는지,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나를 얼마나 방치했는지.




2개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시간


마지막 2개월은 갑자기 인생이 확 바뀐 건 아니었다. 큰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빈 시간에 AI라는 도구가 들어오면서 나는 다시 손으로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AI가 모든 걸 대신해주진 않았다.

처음엔 어색했고,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결과도 들쭉날쭉했다.

그래도 중요한 변화가 하나 있었다. 나는 다시 ‘할 수 있는 일’을 붙잡기 시작했다는 거다.


억지로 일하려고 마음먹는 게 아니라, 작게라도 하나씩 만들고 정리하고 기록했다.

그러다 보니 흐트러졌던 마음이 조금씩 정돈되는 느낌이 들었다.


자존감이 회복되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했다.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오늘 할 일을 정하고 끝내는 것.

아주 작은 결과라도 남기고, 그걸 다음 날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


그 과정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필요했던 건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작은 틀’이었다.

AI는 그 틀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AI와 함께한 기록들.jpg Ai와 함께한 시간들




멈춤은 끝이 아니다


만약 내가 쉬지 않고 바로 AI를 만났다면, 지쳐서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쉬기만 하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면,

두려움을 억지로 눌러두고 또다시 나를 몰아붙였을지도 모른다.


8개월 동안 멈춰 있었기 때문에, 2개월 동안 다시 정리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은 ‘도피’의 기록이 아니다.

이 글은 내가 멈추는 법을 배우고,

다시 시작하는 방식을 바꾸고, 결국 조금 더 나아진 사람이 되어가는 진화의 기록이다.


지금 멈추는 게 두려운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잠깐 멈춘다고 뒤처지는 게 아니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가 될 수 있다.


이제부터 나는 그 과정을 하나씩 꺼내어 보여주려 한다.
멈춤이 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나를 바꿔놓았던 그 시간들을.

멈춰 있는 누군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 첫걸음이 조금 덜 두렵도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