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차 전략가의 자존심, 그리고 생존을 위한 계산
휴직 연장을 신청하던 날, 전화기 너머 인사팀 담당자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마치 남의 회사 이야기를 하듯, 복직이 어려울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 화면이 꺼지는데, 내 마음속 스위치도 같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아, 내 자리는 이제 없구나.’
16년. 대리에서 과장, 팀장, 그리고 베트남 법인장까지. 회사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다. 베트남에서 5년, 그 낯선 땅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조직을 세팅할 때도 나는 회사를 믿었다. 내가 헌신하면 회사는 나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회사는 나를 ‘필요’에 의해 썼고, 그 필요가 다하자 ‘비용’으로 분류했다. 처음엔 화가 났다. 밤마다 이불을 걷어찼다. ‘내가 어떻게 일했는데.’ ‘돌아가서 어떻게든 버텨볼까? 책상이 화장실 옆에 있더라도?’
그런데 며칠 뒤, 집 앞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정은 걷어내자. 내가 평생 해왔던 일이 뭔가. 시장을 분석하고, 위기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짜는 ‘전략기획’ 아니었던가. 지금 내 인생이라는 회사가 부도 위기다.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 냉정하게 ‘구조조정’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짜야 할 때였다.
사실 나는 트렌드에 뒤처진 ‘옛날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베트남 법인장 시절, 챗GPT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누구보다 먼저 반응했다.
본사에 보고도 하기 전에 법인 카드로 유료 계정을 결제해서 기획팀과 개발팀장에게 아이디를 쥐여줬던 게 나였다.
“이거 무조건 뜬다.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지 당장 테스트해 봐.”
나는 늘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으려 노력했다.
다만, 그때의 나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도구를 쥐여주는 ‘관리자’였을 뿐,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그래, 내가 기술을 모르는 게 아니잖아?’
회사라는 계급장을 떼고 보니, 오히려 더 자유로웠다.
결재를 받을 필요도, 보안 규정 때문에 막힌 사이트를 우회할 필요도 없었다.
이 강력한 도구(AI)를 회사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 써보면 어떨까?
각성의 순간은 거창하게 오지 않았다.
게임기 패드를 놓고 멍하니 소파에 누워 있던 어느 오후였다.
무료함과 불안함이 뒤섞인 그 끈적한 공기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하자. 당장 돈이 안 돼도 좋으니까, 생산적인 일을 좀 하자.’
그 길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자본금도 없고, 직원도 없다. 지금 당장 이 방구석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뭘까.
내가 내린 답은 ‘콘텐츠’였다.
나의 경험, 나의 지식, 그리고 내가 가진 시간을 갈아 넣으면 뭐라도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막연했다. 주제는 뭘로 하지? 채널 이름은?
그때 내 옆에는 유능한 파트너가 대기 중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팀장들을 소집하는 대신, 챗GPT와 제미나이(Gemini) 창을 켰다.
“지금부터 나랑 사업 구상 좀 하자. 내가 가진 자원은 시간과 노트북뿐이야.”
AI와의 대화는 밤새 이어졌다.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고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베트남에서의 경험, IT 지식, 전략 기획 노하우...
흩어져 있던 내 인생의 조각들이 ‘기획안’이라는 형태로 모니터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빡빡한 KPI(핵심성과지표)를 걸었다.
회사가 시킨 것도 아닌데, 16년 차 직장인의 본능이 튀어나왔다.
[목표]
유튜브 쇼츠: 매일 3개 업로드
블로그 포스팅: 매일 1개 발행 (한글/영문 병행)
미친 일정이었다.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AI가 있었다.
내가 기획 의도를 던지면 GPT가 대본을 썼고, 제미나이가 트렌드를 분석해 줬다.
영상 편집 툴이 서툴러서 끙끙대기도 했지만, 결과물이 하나씩 쌓이는 걸 볼 때마다 짜릿했다.
물론, 현실은 냉혹했다. 야심 차게 시작한 블로그는 방문자가 거의 없고,
유튜브 조회수는 처참해서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다시 ‘일하는 뇌’를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뭐 하고 놀지?”가 아니라,
“오늘은 어떤 영상을 기획하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 변화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구원받았다.
복직은 점점 어려워지는 분위기지만, 나는 더 이상 인사팀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 방구석 사무실은 이미 24시간 풀가동 중이니까.
나는 그렇게 회사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나는 나를 고용했다.
다음 7화 <생산성 100배? 아니, 다시 '일하는 뇌'를 돌리는 기쁨> 거창한 성과가 없어도 괜찮다. 멈춰있던 엔진이 다시 예열되는 그 소소한 즐거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