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 십수 년이 넘어가면 저 말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고 더러워서 피한다지만, 어쨌든 똥은 손해 보는 게 없다는 걸.
요즘 같은 세상에 할 말 못 할 말 참지 않는다는 MZ 사내 문화가 진한 곳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소위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곳에선 여전히 똥이 무섭다. 월급은 짜지만, 내가 내 밥통 걷어차지 않는 이상 지킬 수 있는 철밥통이라 똥이라는 인자가 생기는 걸까?
나는 학교에서 15년째 근무 중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름 그것에 사명감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다시 돌아온 학교는 코로나로 바뀐 세상만큼이나 달라져 있었다. 나름 육아와 일이 병행되는 직업군이라 하더라도 빡셌다. 젠장, 교사가 이 정도이면 진짜 다른 직업군의 여성들이 어떻게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지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집에서는 학교 걱정, 학교에서는 아이 걱정. 참 생산성 떨어지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런 느긋한 걱정들을 일순간에 날려줄 도우미들이 있었다.
바로 덩들의 등장!!!
처음 옮긴 학교에서 9월에 복직해 아이들의 이름을 막 부르던 1교시, 한 아이가 앞으로 와 말했다. - 선생님. 배가 아파요.
- 어? 그래. 많이 아파? 그럼 보건실 한번 가볼까?
1학년이었고, 아이들이 배가 자주 아프니까. 대부분 보건실에 갔다가 화장실에 들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나머지 아이들에게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볼까요 라고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교실 앞문이 팍 열렸다.
파란색 방역복을 입은 덩치가 씩씩거리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저건 뭐지?
나의 멍함은 방역복 속의 걸걸한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 아니, 열 나는 얘를 보건실에 보내는 사람이 어딨어요!!!
열 나면 보건실에 가면 안 되는 건가? 우리 반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다른 반 아이를 착각하나. 저 사람은 근데 왜 학교에서 방역복을 입고 있지? 코로나 때문에 방역복 입은 사람이 학교에 상주하나?
찰나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내가 애 낳고 기저귀 갈던 사이에 학교가 이렇게나 많이 달라졌나? 아니면 새로 온 이 학교만의 뭔가가 있는 건가. 얼빠진 내 표정을 보고 탄력받은 방역복은 더 신이나 목소리를 높였다.
- 아니 생각이 있는 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 열나면 보건실 못 들어오는 거 몰라욧! 애 안 키워봤어? 애 있어? 없어?
어어... 잠깐만.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방금까지 기저귀 갈다 학교 뛰어온 나한테 애 있냐 없냐니, 그리고 배 아픈 애를 보건실 보낸 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죽을죄라도 지은 건가.
하지만 입에서는 어어.. 그게 아니고.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보낸 건데.. 라고 문장도 아닌 단어의 나열만 겨우 나왔다. 내 말은 들을 생각이 애초에 없어 보이던 방역복은 제 뒤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리반 아이를 가리키며 “ 열나니까 집에 연락해서 보내세요.” 라고 일갈을 가하고 홱 돌아섰다.
병균 보듯이.
그 말 외에는 방역복의 행동과 눈빛에 어울리는 미사여구를 찾지 못하겠다.
그 때도 늦지 않았는데.
- 저기요. 배가 아프다고 하는 아이를 어떻게 바로 열이 난다고 알 수 있나요? 그리고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요?
라고 왜 나는 말하지 못했을까. 머리 회전이 서서히 되면서 속 안에서 뜨거운 게 부글부글 올라왔다. 스팀이 빡 오르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은근하게 뜨거워지는 무쇠솥 열기가 오래 가듯이 그때의 빡침은 꽤 오래 나를 괴롭혔다.
다음 날, 어느 정도 학교의 일상에 적응이 되면서 들어보니 나 말고도 보건 선생한테 당한 사람은 수두룩했다. 그에 대한 대외적 평가는 ‘좀 특이한 사람’ 이였고 안에 속뜻은 건들지 말아야 할 인물이었다.
대강 들은 세부 내용은, 아픈 아이가 보건실에 오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아이들이 우루루 내려오면 곧바로 교실로 전화가 날라오거나 아니면 직접 교실 문을 여는 사태가 종종 일어나기도 한단다. 교육청에서 빗발치는 공문에 뚜껑이 열리면 그날 교무실에서 일장 연설이 터지고, 교감샘은 교무실 문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방역복 흰색에도 흠칫흠칫 놀란다고.
말도 안 통한다는 방역복의 보건샘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바로 급식실이라고 한다. 식판 위에 넘칠 정도로 반찬을 퍼 가는 그녀는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비닐팩에 따로 입맛에 맞는 반찬이 나오면 싸가기도 한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범인의 눈으로는 벅찬 위인이었다.
근데 또 희한하게 그게 접점이 있는 사람만 열이 받지, 막상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던 사람들은 수더분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자기 일이 되어야지만 깨닫는 게 세상 이치다.
처음 간 학교에서, 첫날, 방역복과의 만남은 실로 강렬했다.
- 보건샘? 특이한다고는 하던데 나는 잘 모르겠던데.
라고 여유 있게 말했던 옆 반샘도 반 아이들이 웬만큼 아프다고 하는 건 보건실에 보내지 않고 교실에서 알아서 처치했다는 사실은 3개월이 다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 학교 보건실은 참으로 한산하고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