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아무튼 그런 종류의 능력들. 배울 방법도 없고, 배운다고 해서 느는 것도 아니다. 점쟁이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그 능력을 타고 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왠지 찝찝한 일.
왠지 가기 싫은 장소.
왠지 먹기 싫은 그 빵.
왠지 불편한 그 사람.
똑 떨어지게 설명하긴 힘든 그 느낌이 우리의 인생을 얼마나 좌지우지하는지 모른다.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불태운 한 달이 지나니,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유독 신경이 쓰이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중년의 한 여성, A였다. 처음엔 말을 잘 하는 사람이네 라는 가벼운 인상평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A의 말이 내 귀에 탁탁 걸리기 시작했다.
- 아니 그게 아니고.
- 4반 샘은 뭘 모르나 보네.
- 그래? 내가 한 말은 그 뜻이 아닌데.
유독 ‘내가 한 말’ 뒤에 곧바로 따라붙는 A의 부정적인 반응에 처음엔 그런가? 내가 틀렸나 보네. 하고 별생각 없이 몇 번 넘어갔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같은 패턴이 반복되자 어느 정도 나도 감이 왔다. 나한테는 대놓고 꼽을 주고 연달아 다른 사람 말 뒤엔 급하게 칭찬을 붙이는 A를 보고 있자니 너무 노골적이라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 부장님, 옷 너무 이쁘다. 잘 어울려요. 어디서 산 거야?
- 너무 좋드라. 이거 자기도 써봐봐.
- 이거 봐봐. 자기들. 내가 차린 첫 제사상. 요즘은 이렇게 제사 차린다고 하더라. 인스타 올리려고.
상황이 거기까지 오자, 나도 나의 행동을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은 A한테 내가 무슨 말실수를 하거나 불편하게 행동했던 적은 없었는지를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딱히 그럴만한 것은 없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둘만 탕비실에 있었던 적도 없었다. 기분이 나빴다면 아마 그거였나하고 떠올릴 만한 일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고 면전에 대고
- 제가 뭘 기분 나쁘게 한 게 있나요?
라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그런 걸 팍팍 물어볼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라면 A가 만만하게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게 찝찝한 감정을 가진 채로 3개월을 더 근무했다. 불꽃이 파바박 튀는 일들이 있었다면 그걸 계기로 대화의 물꼬를 텄을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A의 어투가 싫어서 나는 티타임에 가는 것도 피했다. 항상 대화의 중심엔 A가 있었고, 은근히 학교의 이 사람 저 사람을 돌려 까는 그녀의 말본새가 거북스럽기도 했다. 일단 확실한 건 A는 분명 학교 안에서 이빨이 좀 센 사람은 맞았고 다른 동료들도 그걸 인지하는 듯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로도 티타임 시간 30분은 가볍게 흘러갔으니까.
일을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미친 듯이 출근해야 하는 워킹맘의 현실은 때때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자잘한 고민들을 끌고 갈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 가면 부딪히는 얼굴이라 완전히 지우긴 힘들었다.
그렇게 방학이 왔다. 그런데 방학 첫날, 뜻밖의 인물한테 카톡이 날라왔다.
맞다.
바로 A였다.
-샘님. 물어볼게 있는데 저번에 보니까 봉봉 브랜드 옷 입었던 데 그거 어디서 산 거야? 사이즈는 뭐고? 내가 봉봉 브랜드 옷을 좋아하잖아.
이건 뭔가?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 얼굴을 봤다가 다시 핸드폰 화면 속 문자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
이거였나.
설마 그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조금은 그게 아닐까 싶기도 했었는데.
A는 옷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매번 옷이 확확 달라졌고, 거의 다 명품이거나 명품에 준하는 비싼 옷들을 주로 입었다. 학교에 출근한 지 이틀이 지나고 티타임 시간에 다른 선생님이 내가 입은 봉봉 브랜드 옷을 보고
- 어머 이거 봉봉 브랜드 아니예요?
라고 물었다. 나는 아,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A를 보더니
- 우리 A샘도 봉봉 브랜드 좋아하시는 데 맞죠?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A에게 눈이 갔고, A도 뭐 그렇지... 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다음 화제로 넘어 갔던 기억이 났다. 그 다음날 나는 A가 봉봉 브랜드 옷을 입고 출근한 것을 보았다.
아 좋아하는구나.
봉봉 브랜드 옷이 정말 많으시네... 그러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A가 불편해지면서 이런저런 이유를 찾던 나는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봉봉 브랜드 옷을 입고 학교에 출근하지는 않았다.
딱히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 직감이, 그 삘이, 그 감이, 그 촉이 자꾸 그 옷을 가리켰다. 그래도 에이 설마, 그것 때문에... 나이 다 찬 어른이. 정상적으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그건 아닐거야. 라고 몇 번이나 의심했다 웃었다 그렇게 넘어갔었다.
그런데 그 불편했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봉봉 브랜드의 옷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순도 100프로 그것 때문이였어 라고 A가 자기 입으로 말할 일도 만무하다. 진실은 A밖에 모르겠지. 누구의 마음을 어떻게 다른 사람이 다 알수 있느냐 말이다.
하지만 봉봉 브랜드 옷을 입은 나의 어떤 점이 A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나의 어떤어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리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는) 점들이 A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봉봉 브랜드의 옷을 구매한 출처를 주고 받은 후, A와 더는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다. 개학이 돼서 학교에 간 이후로도 전과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는 애써 A에게 먼저 인사하거나 티타임때 간식을 A앞에 가져다주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데면데면한 성격이지만 나름 노력은 하네, 라는 정도의 인상을 주는 일도 그만두었다. 나를 싫어하는 게 확실한 사람한테 더는 나도 노력을 할 필요가 없고 그 사실 자체가 전보다 그렇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A는 A고 나는 나였다.
어렴풋이 느껴진 불편한 감정은 A뿐만 아니라 나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결론적으로 서로가 맞지 않는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얼마든지 생길 수 밖에 없는 불편한 감정이고 한동안 육아로 집에 틀어박혀 있던 나는 아, 회사가 이런 곳이구나 라는 걸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찾으려 했고, A에게 실수했던 나의 못난 점들을 애써 찾으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