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에 스무 명을 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1년 동안 별의별 일들이 다 생긴다. 실제론 스물다섯 명이지만, 그 뒤에 있는 보호자 한 명씩을 더해야 이치에 맞다.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교실에 들어선 아이들끼리의 충돌과 갈등은 소소하냐, 아니면 어마무시하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1학년은 1학년대로, 56학년은 머리가 커진 그 학년대로 문제는 생기게 마련이다.
그 중 딱 가운데 학년을 담임했을 때의 일이다.
민들레는 자주 보건실에 가는 아이였다. 머리가 아프다, 목이 아프다, 이빨이 아프다, 턱이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무릎이 아프다.. 아픈 부위도 다양했다. 처음에는 표정과 목소리 모두 힘이 없게 느껴져 얼른 보건실에 가보라고 하고 가정에도 곧바로 연락을 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보건실에서도 연락이 왔다. (다행히 방역복은 아님...)
- 오늘도 민들레가 보건실에 왔네요. 교실에서는 좀 어떤가요?
보건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이다. 매일 출근은 기본이고, 심한 날은 두세 번 보건실 문을 여는 민들레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침대 두어 개랑 간단한 약품이 있는 그곳이 녀석에게 엄청난 안정감을 주기라도 하는지, 나중에는 보건실 간다고 말도 없이 내려가 있기도 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어느 날 민들레에게 물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민들레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보건실이란 단어를 읊었다.
- 많이 아프니? 보건실 꼭 가야 할까?
- 네 많이 아파요.
아프다는 데 할 말이 없었다. 기운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민들레. 후 한숨이 나왔다. 뒤돌아 교실 밖을 나가는 민들레의 발걸음 소리가 힘차게 들렸다면 내 기분 탓일까. 꾀병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싶지만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다.
때때로 아이들이랑 노는 모습 속 민들레는 꽤 격했다. 수업 시간에 줄곧 엎드려 있거나 책상 끄트머리에 요상한 낙서를 그릴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행동이 거칠기도 했지만,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가 굉장히 업이 된 상태였다. 단순히 노는 게 별나네 라고 보기에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민들레는 놀면서도 연신 친구들에게 기대고 뒤에서 매달리고 안기길 원했다. 잘 받아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걸 싫어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민들레의 모친과 전화로 상담을 몇 번 했다. 전화 연결도 쉽지 않았고, 민들레의 평소 학교 모습을 듣는 걸 영 불편해하는 기색이었다. 민들레가 배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등의 이유로 보건샘이 전화를 걸어도 모친은 되도록 학교에서 어떻게 있을 수 없겠냐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서도 안 들릴 정도로 웅얼거리는 민들레는 엄마랑 통화할 때는 그렇게 목소리가 밝고 명랑하다고 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목소리도 좋은데 왜 보건샘이 자꾸 전화하냐 의문이 들 만도 했을 것 같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보건샘은 민들레가 학교에서 엄마랑 전화하고 싶어 보건실에 내려오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는데, 나도 동의했다.
늘 엄마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민들레 마음속에 있나 하는 생각을 나도 몇 번씩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학교에서, 친구가, 선생님이, 타인이 채워 줄 수 있는 게 아닌데. 한 편으로는 그런 민들레가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점심시간, 시끌벅적한 급식소였다. 보건실에 다녀온다던 민들레는 반 아이들이 모두 배식을 받고 식사를 할 때쯤 어기적어기적 나타났다.
- 선생님. 저 밥 먹으면 안된데요.
- 응?
- 보건샘이 먹지 말래요. 아파서요.
- 그래? 음....
평소에도 밥알을 깨작이던 민들레였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그 말을 믿을 순 없었다. 보건선생님이 아예 밥을 먹지 말라고 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그럼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남기자고 했다. 원래도 반은 남기던 녀석인데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배식을 받으러 갔다.
자꾸만 예외를 두고 싶어 하는 모습이 눈에 그대로 보였다. 아프다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고, 재미없겠다 싶으면 그 활동 시작할 땐 어김없이 배가 아팠다. 화장실도 가야 하고, 보건실도 들러야 했다. 수업 시간에는 조용한 복도를 산책하듯 돌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급식을 먹지 말라는 소리를 보건샘은 한 적이 없다. 결국엔 보건샘이 교실까지 올라와 복도에서 셋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 민들레야. 보건샘이 밥 먹지 말라고 했었니?
- 네.
- 보건샘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민들레야.
- 네. 없어요.
보건샘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보건샘 만큼이나 기가 차고 난감할 것이다. 우물쭈물한 목소리로 민들레는 두 사람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아이가 눈앞에서 두 선생님을 사이에 끼고 거짓말을 하는데도 너 거짓말을 왜 하니? 라고 물을 수가 없었다. 보건샘과 나는 둘 다 민들레의 엄마를 떠올린 것이다. 언제나 뭔가가 삐딱하고 뾰족하게 반응하는 민들레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아프다고 했으면 아픈 거지, 그 외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모든 게 과민반응 아니냐는 식이었다.
매번 보건실을 찾는다는 이유로 보건샘이 모친과 전화를 했을 때도 모친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몇 번이나 담임인 내가 같은 내용을 전했는데도 말이다. 민들레가 보여준 반응들에 새삼 놀라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복도에서 보건샘을 내려보내고, 교실로 들어가는 민들레의 뒷모습을 보는 데 참 마음이 복잡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이를 불러 자신이 한 잘못이 무엇이고 그 잘못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 반드시 짚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가정에 연락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간 세상은 많이 변해 있었다. 학교도 변했고 그 부속품인 하나인 나도 변했다.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 꾸짖고 타이르고 개선하는 과정이 얼마나 애정과 열정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 모든 하나하나의 과정이 결국 책임감인데, 요즘 세상엔 어지간한 마음으로는 벅찬 일이다.
일단 잠시 더 생각해 보기로 나와 타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민들레 엄마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날라왔다. 어제 점심시간에 학교 운동장에서 민들레가 친구에게 배를 맞아 울었다는데 선생님은 뭐하고 있었냐며, 재발되지 않도록 조취를 취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반 아이들이 다 등교하고 나서 어제 민들레와 함께 운동장에 있었던 아이들 네 명을 복도로 불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넷이서 좀비 게임을 했는데, 가위바위보를 늦게 낸 민들레에게 한 아이가 싫은 소리를 하자 민들레가 먼저 얼굴을 때렸고, 맞은 아이가 발로 배를 찼다고 했다. 시종일관 먼저 맞았다고만 말하던 민들레는 나머지 아이들 세 명이 모두 똑같은 말을 하고, 급기야 때렸다는 아이가 억울하다며 엉엉 울자 결국엔 ‘먼저 때렸어요.’ 라는 말을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나머지 아이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하고 따로 불러 한 명 한 명 이야기해보아도 급하게 바뀌거나 달라지는 부분이 없었다.
나머지 아이들을 교실로 돌려보내고 마지막으로 민들레와 이야기했다. 이미 아침 시간은 끝이 났고, 1교시가 시작한 지는 삼십 분이 지나 있었다. 나머지 반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순 없었다. 때로는 즉각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들이 교실 속에선 불쑥불쑥 나타나기 때문이다.
- 민들레야. 그럼 친구들하고 놀다가 기분이 상해서 얼굴을 때리고, 그 친구가 발로 배를 찼다는 말이지?
- 네 맞아요.
- 친구도, 민들레도 일단 때린 건 서로 잘못이야.
- 네.
- 거짓말을 한 것도 그렇지?
- 거짓말 안 했어요.
- 엄마한테 혼이 날 거 같아서 그랬니?
- ...... 네.
- 네가 한 일에 대해선 말을 안 한 거고?
- 네.
- 그래. 알겠어. 다음에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면 돼.
그리고 나는 민들레 모친에게 어제 운동장에 있었던 일의 순서에 맞추어 사실을 알려 주었고, 민들레와 나눈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했다. 자신이 오해한 부분이 있는 거 같다며 신경써줘서 고맙다는 답장이 왔고 동시에 1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렸다.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이미 하루가 다 끝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다.
결국 나는 민들레에 관한 고민을 아예 그만두자고 결정했다. 어설픈 책임감때문에 오늘과 같이 반에 나머지 아이들을 한 시간 내내 방치시킬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고, 더는 민들레에 관해 현미경을 들이밀었다간 나의 정신이 바사삭 부서질 거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