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자신이 맡겨진 일을 무사하게 해내고, 17일에 월급을 받는다. 학교 안에는 동학년이라는 동료가 있고, 자신이 맡은 교실 안의 학생과 그 학부모는 일종의 고객이다. 상부에는 관리자라는 이름으로 교감과 교장이 있다.
이 모두가 ‘교육자’라는 애매한 테두리로 엮인 사이들이라, 그 관계성이 애매모호하기도 하다. 월급을 주는 상사는 아니지만, 나름 이쁘고 못난 직원은 존재하듯 관리자의 눈에도 알아서 필터링은 될 것이다. 성실과 책임감이라는 도덕성을 과하게 요구하는 집단이다 보니, 보통의 교사들은 알아서 관리자에게 예의를 갖추고 되도록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십수 년 전. 새내기 교사일 때는 교감, 교장이 아주 높고, 어렵게 보였다. 예산을 써야 하는 업무를 배정받게 되면, 때때로 결재 서류철을 들고 교무실과 교장실을 돌아 뒷걸음으로 방을 나가곤 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 얘기다.
시간이 더 지나서 바라본 관리자들은 그야말로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 지난한 승진의 절차를 하나씩 다 밟고 관료제의 피라미드 정점에 선 자들이니 말이다. 능력자일 수도 있고 운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를 악물고 고난과 나름의 역경을 이겨낸 승리자들이었다.
‘승진’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수년간의 갖은 노력 끝에 따낸 열매가 바로 ‘교감’, 그리고 ‘교장’이다. 그들은 이제 더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교과서를 펼치고, 학부모의 민원을 상대하며 미처 마치지 못한 업무 더미를 껴안고 퇴근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대신에 교실 안 아이들을 대하듯 학교 안 교사들을 바라본다.
열의에 찬 후배님들은 예뻐 보이고, 설렁설렁하는 후배님은 눈에 차지 않는다.
그런 단순한 논리라면, 받아들이기 쉬운데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기준을 가진 관리자들도 더러 있다. 관리자의 꽃은 바로 인사 아닌가. 한 학사 일정이 마무리되는 2월에는 학교에 피바람이 돈다. 몇 학년을 맡고, 어떤 업무를 맡는지가 한 해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 특히 금쪽이가 포진된 반을 뽑으면 그 한 해는 암울한 미래가 그려진다.
그러나 관리자의 시각은 또 다르다.
금쪽이든, 은쪽이든 간에 교사들이 군말 없이 주는 데로 반을 척척 맡아주길 바란다. 소란 없길 바라고. 민원 없길 바라고. 자신한테 교사들이 대들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먹힐 만한 만만하면서도 책임감도 적당히 있는 거절하지 못하는 위인들을 찾기 바쁘다.
- 말만 하세요. 원하는 업무로 줄테니까.
- 동학년에 누구 붙여줄까요? 일 잘하는 박샘? 진샘? 누구누구. 말만 해요.
- 우리 김샘 일 잘하는 거 누가 모르나.
- 진짜 아무도 안 해서 그래. 진짜 부탁해요. 통 사정한다. 내가.
어찌보면 관리자한테도 2월은 참 빡신 달이다. 고개 빳빳이 들고 훈시하듯 학교 주변을 배회하시던 분들이 죽어도 안 구해지는 학폭 같은 업무 담당자나 기피 학년 부장 찾으러 땀나게 다니는 거 보면.
그런데 재미있는 건.
결과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은 전혀 다른 인물들이라는 거다.
바로 대 놓고 ‘나 못해.’ 배째라 하는 위인들이다.
그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뒤에서 나를 욕하든 말든 간에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아프고, 힘든 일은 못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에 금쪽이 있는 학년도 못한다. 웃긴 건, 아주 훌륭한 교육자처럼 토시 하나 하나 트집잡는 관리자일수록 오히려 그런 위인들에겐 눈감아 주는 게 빠르다는 거다.
학교 인건위 운운하면서 관리자가 자신한테 피해를 줬다고 주장하는 어떤 A교사는 해마다 과학 전담을 맡고 업무도 없다. 옆에 사람들이 A교사 뒤에서 수군거려도 귀만 닫으면 그만인 일이다. 학교를 옮겨 다녀도 만나는 관리자들마다 모두 A교사에게 비슷한 처우를 약속하니까.
예전 같았으면, 승진에 다들 목매던 시절에는 관리자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가 다 힘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고리타분한 회식문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상석에는 교장이 앉고 그 양옆으로 포진된 신규교사( 뭣 모르는) 와 술 잘 마시고 분위기 맞춰주는 중견 교사(승진 바라기) 몇몇.
그러나 요즘에는 ‘노래방’이란 단어도 위험한 세상 아닌가.
결국엔 관리자도 조금 연봉이 높은 회사원일 뿐이다. 교육자라는 자긍심은 타인이 인정하는 것이지, 자신이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직위와 나이를 앞세워 타인을 밟거나 무시하거나 훈계하는 게 통용되는 세상은 이제 옛날 말이다. 생각이 옛날에 머물면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는 것이다.
‘교사’ 라는 자리가 흔들리는 세상이다.
‘승진’ 보다는 자신의 ‘행복’과 ‘안전’에 더욱 중점을 둬야 하는 게 시대적 흐름이다.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인 게 학교라고 해도, 이제 그 안에서 교장, 교감이 대장 노릇하는 건 이젠 어렵다. 자신이 걸었던 길을 걸어가는 후배 교사들에게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건 과도한 지적질이 아니라 넉넉한 눈과 아량뿐이다.
어쨌든 일선에서 아이들을 매일 마주치고,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견디는 건 결국엔 ‘담임 선생님’이란 이름을 가진 자들이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있다가 12시만 되면 한산한 급식소로 슬슬 내려오는 그대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