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어려운 이유는 팔 할이 사람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현명한 눈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우스운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내가 좋은 상황이 되어야지 남도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진리 아닌 진리가 유행했던 때도 있었다.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꽤나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니가 만난 사람들이 별로였던 이유는, 바로 니가 별로라는 말이니까.
스무 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학을 다녔다. 타지에서 만난 아이들 다섯 명 정도 모여 2층 집에서 하숙을 했다. 방은 4개였는데, 하나는 큰 방이고 나머지는 모두 작은 방이었다. 큰 방 하나에 두 명이 함께 생활해야 했다. 좁더라도 1인실이 좋았지만 이미 먼저 온 세 명이 각자 방을 정한 상태였다.
S랑 나랑은 같은 방을 썼다. 불행히도 침대도 하나였다. 큰 사이즈라 괜찮지? 라고 하숙집 아줌마는 말했지만, 그때라도 아니라고 나는 방을 뛰쳐나왔어야 했다.
외동으로 자란 나는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이 방을 썼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처절하게 깨달았다. 제아무리 털털한 사람이라도 가족이 아닌 누군가 한 방을 같이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킨 건, 싫고 불편하다는 걸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꾹꾹 담아두려는 나의 성격이었다.
S도 한 예민한 성격이었지만 싫은 건 그 자리에서 싫다고 말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얼굴에도 그 표정이 다 드러났다. 날이 갈수록 나를 포함한 하숙집 전체 사람들이 S의 눈치를 보았다. 신경질이 많은 타입이었지만, 화를 내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도 했다. 우린 서로 어색했다가 화해했다가 번갈아 가며 울었다가 다시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소리에도 잠결에 ‘아이 씨’를 연발하는 S였다. 까치발로 살금살금 등교 준비를 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만큼이나 S도 힘든 시간이었을거다.
하지만 나는 정말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심지어 우리는 같은 과였고, 다른 사람들은 S와 나를 단짝이라 보았다. 동향 출신에, 같은 하숙집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니 어색한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숨 막히는 시간이 대학교 1학년 내내 이어졌다. 결국에는 엄마에게 통사정하여 나는 그 하숙집에서 나와 2학년 때부터는 홀로 원룸에서 자취를 했다.
그리고 S는 얼마간 더 그 방에서 홀로 지냈다. 자신을 피해 자취를 했다고 나와는 그 후 사이가 한동안 좋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3년이 더 남았고 같은 과 학생 수는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 후 임용고시를 치르고 나와 S는 교사가 되었다. 같은 지역에 합격했지만 우리는 축하나, 안부의 인사도 서로 주고받지 않았다. 남보다 못한 사이인데 접점이 많으니 불편한 점이 더 많았다.
교사가 되고 나서 8년이 지났을 때였다. 우연히 광안리 바닷가 근처의 커피집에 앉아 있는 S를 보았다. 이름을 크게 부르면 뒤돌아볼 거리였다. 검은 머리칼에 야구모자를 걸친 모습이 익숙했고 얼핏 돌린 옆얼굴은 S가 맞았다. 시간이 꽤 흘렀다고 생각했는데도 나는 가슴 한 곳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복잡한 인파 속에 나는 일행과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그때보다 10년은 더 지난 지금, 길에서 다시 S를 마주친다면 나는 어떤 얼굴일까? 그간 잘 지냈냐고 인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지나가 버리게 될까.
시간이 흘러도 풀리지 않는 숙제는,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