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가족이란 이름의 악마 (2)

세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1981년 1월 12일 22:40


1월의 밤바람은 대단히 차갑고 서글프다.

정민은 잠옷에 외투만 걸친 채로,

낡은 아파트 단지를 벌써 다섯 바퀴 째 돌고 있다.

정민은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다.


10시 40분..

이렇게 늦게까지...


아파트 입구 쪽으로 나와 골목 입구를 기웃거려 보아도

아내의 모습은 저 멀리서도 보이지 않는다.


- 쉬이이이잉


시커먼 비닐봉지가 낙엽처럼 날리다 공중으로 붕 띄어 올랐다.

10분쯤 더 지나 얼어붙은 두 손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을 때

150미터 떨어진 횡단보도 끝으로 검은색 세단이 멈추었다.

차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외양의 여자가 내렸다.


아내, 유선이었다.


정민은 숨죽이고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내는 기계적으로 차 문을 닫고, 잘 가라 고맙다 인사도 없이 길을 건넜다.

차는 그 자리에 30초가량 멈춘 뒤, 곧바로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 이 늦은 시간 아내는 누구와 있었던 것일까?

교회일 때문에 늦는다고 했는데,,, 혹시 거짓말이었을까? ’


유선은 지난 6년 동안 다섯 번 임신했고, 다섯 번 모두 유산했다.

마지막 유산은 지난 해 여름이었다.

찌는 듯한 날씨였고, 자신의 어머니가 또 한바탕을 했고,

아내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턱을 찔렀다.


병원에서 정신 분열증 증세를 보인다 했고, 석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아내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이상 임신이 불가능했다.

의사의 입에서 임신이 불가하다는 진단이 떨어졌을 때,

오히려 정민은 안도감을 느꼈다.

모든 게 끝이 났고,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시도할 것도 없으니

아내와 자신은 담담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모든 게 무뎌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사라지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 여보, 서울을 떠나자. 시골로 내려가 살자.

서울에서 하던 일 접고, 우리 맘 편하게 살자.... ”


정민은 아기 달래듯 유선을 안고 부드럽게 말했다.

유선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민은 그런 아내를 힘주어 꽉 안았다.

서울을 떠났고,

정민과 유선은 그의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정민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디, 유선만 제정신을 차리고 전처럼 어서 정상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랐다.


유선은, 정신 병원을 퇴원한 후에

한 달가량 시체처럼 집 안에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더 지난 후에야 밥을 먹고, 반찬도 먹고,

화장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외출도 했다.

모든 것이 전처럼 좋아지기 시작할 즈음,

함께 저녁을 먹던 중에 유선은 이렇게 말했다.


“ 교회 목사님이 소개해 준 큰 교회에 다니게 됐어요... 내일부터.. ”

“ 그래? 재밌네.. 목사님이 자기 교회 다니라 안 하고, 다른 교횔 추천한 거야?”

“ 아,,, 그 교회가 저한테 더 맞을 것 같다고 그러네요.”

“ 그런데... 당신 원래 그런 거 안 믿지 않았나?”

“ 이제.... 믿어 보려고요.”


유선은 고개를 들고, 똑바로 남편의 눈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렇게 정했고, 그러니깐 너는 알아두라고.’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민은 두 눈을 껌벅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래, 그렇게 해. 당신이 하고 싶은 데로.....”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고,

기도도 하고, 그렇게 마음의 평화도 얻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은

모두 다 지나갔다고, 정민은 믿었다.



1981년 6월 18일 01:00


- 뎅......


새벽 1시를 알리는 벽시계 소리가 텅 빈 거실을 채웠다.


- 탁, 픽- 후.....


어둠 속에 빠알간 불빛이 생기더니,

뒤따라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내는 아직 교회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귀가 시간이 계속 늦어지고 있었지만, 아직 자정이 지난 적은 없었다.

아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는 교회는

수양동에 있다고 했다.


수양동이라 하면, 서울 한복판에 있는 곳인데 지금 우리가 사는 곳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라 정민은 걱정이 된다고 말했고, 아내는 말없이 그런 정민을 쳐다 볼 뿐이었다.

아내의 그런 시선에 정민은 머쓱해졌다.


“ 아니... 그러니깐.. 내 말은 교회 자체를 가지 말라는 건 아니고...

다니기 불편하니까... 당신이 걱정이 된다는 것뿐이야.”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정민이 두 번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고 할 때


- 덜커컥, 삑, 탁


열쇠 돌리는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축 늘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유선이 안으로 들어왔다.


“ 당신,, 이 시간까지 교회에 있은 거야?

너무 심하지 않나? 후...... 일단... 늦었으니깐 내일 말..”


정민은 갑자기 숨을 들이키며, 말문이 막혔다.


‘ 헉... 이게 무슨 냄새지? ’


아내가 옆을 스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냄새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고여 있는 물에서 나는 비릿하고 찝찌름한 냄새였다.

정민의 얼굴은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유선은 눈앞의 정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민이 몸을 돌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 앗. 뭐야 이게...”


그의 맨발에 차가운 물이 닿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실 바닥을 따라 유선이 들어간 안방까지

꽤 많은 양의 물이 떨어져 있었다.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2화2. 가족이란 이름의 악마(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