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너무 낯선 기적
네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Aug 18. 2024
1981년 8월 14일 18:30
목공소 작업을 일찍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민의 투박한 작업화가 힘없이 아파트 계단을 올라간다.
305호, 304호를 지나 303호 앞에 서서 주머니 속 열쇠를 찾는다.
- 달그락, 달그락
열린 문 틈 사이로 그릇들이
작게 부딪치는 소리와
달큰하고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흘러나왔다.
‘ 어? 뭐지?’
놀란 눈으로 정민은 안으로 들어갔다.
“ 어머? 당신 왔어요.. 어서 손 씻고 앉아요. 조개 넣은 된장찌개 괜찮지?
당신 고기보다 조개 넣은 거 더 좋아하잖아..”
정민은 지금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내가 저렇게 다정한 표정으로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 그래, 원래 유선이는 따뜻한 여자야. 마음 착하고 여린 사람...
그동안 힘들었던 일... 다 풀려버린 걸 거야.’
정민은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아니 다 잘 된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가 싱크대 앞에서 분주한 유선을 안았다.
그리고 물기가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 돌아와줘서...”
유선은 호박을 자르다 말고, 도마 위에 칼을 내려놓고
뒤돌아서서 그런 정민을 다시 포근히 안아주었다.
“ 여보,, 나 임신했어.”
1982년 9월 17일 05:13
사방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새벽녘.
“ 으으으.... 후후후후...으악악악악”
방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가 칼날이 되어 정민의 배를 가차 없이 찔렀다.
유선이 방에 산파와 함께 들어간 지 여덟 시간이 지났다.
그 방을 들어가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하고
핏기 빠진 얼굴로 정민은 문 앞을 서성인다.
“ 으악악악”
찢어질 듯한 유선의 비명 소리에 정민은 결심한 듯 소리쳤다.
“ 유선아.. 병원가자... 집에서 할 일이 아니야. 수술받자. 응?
이미 나와야 할 때가 수 달은 지났어.... 응? 병원가자? ”
“ 악악악. 안돼... 병원은 안가..”
실핏줄이 터져 시뻘게진 눈을 간신히 뜬 채
유선은 대답했다.
2년 전, 유선은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죽은 아기를 품에 안았었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아내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건 미친 짓이었다.
아내를 죽이는 일에 스스로 동참하고 있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참담한 절망에 눈앞이 깜깜했다.
그런 정민 곁으로 한 남자가 소리 없이 다가와 앉았다.
그는 검은 머리칼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 ..... ”
남자는 말이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인기척을 느낀 정민이 옆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 후... 유선이랑 저... 힘든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어제 유선이가 엊그제 곧 아기가 나올 것 같다고 믿을 만한 사람을 부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연락처로 연락을 드린 겁니다..”
정민은 고개를 돌려 흔히 볼 수 없는 외모를 가진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칼과 대조되는 하얀 피부에 오뚝하게 솟은 콧날.
깊은 눈매와 앙다문 입.
마치 조각상 같았다.
찡그리고 웃고 화나고 슬픔.. 감정이란 것이 상실된 얼굴.
어딘가 낯설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동글하고 순한 인상을 가진 아내와 닮은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민은 어떻게 아내가 이 남자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스러워 한다는 건,
남편으로썬 너무나 당연했다.
“.... 저는 아내를 믿습니다... ”
정민은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 유선씨와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가냘픈 외모와 다르게 두꺼우면서도, 주변에 파동을 일으키며 퍼지는 느낌이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정민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남자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 아내를 믿으세요. 지금처럼. 아기와 아내는 모두 무사할 겁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산파의 고함 소리가 방 밖으로 새어 나왔다.
“ 다 왔다. 다 왔어.. 보인다. 보여... 힘내!!!”
정민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끄아아아악!!”
짐승이 울부짖는 무언가와 닮은 소리가 연이어 내리쳤다.
그 소리를 듣고 정민은 한 쪽 다리가 도끼날에 찍힌 듯, ‘탁’ 풀려 주저앉았다.
' 일이 벌어졌다.’
눈앞에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싸늘하게 죽은 아내의 모습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의 얼굴에서 굵다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열 손가락이 잘려나간 도마뱀 꼬리처럼 파르르 떨렸다.
그 때, 방문이 열리고 초주검이 된 산파가 얼굴을 내밀었다.
산파의 얼굴은 땀으로 번질거렸고, 저 먼 거리를 한시도 쉬지 않고 달린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 후... 애기 아버지, ..들어오세요..."
정민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애기 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었다.
애기 아버지.
가슴 깊은 곳 어딘가가 울렁거리며 벅차올랐다.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듯, 바보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 뭐하세요? 얼른 들어와서 아기 안아보세요.”
산파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정민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 안은, 죽음과 생명이 범벅된 비릿한 냄새로 꽉 차 있었다.
정민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땀과 눈물로 젖어있는 유선의 얼굴을 감싸쥐며 속삭였다.
“ 고 마 워... 정말... 살아줘서 고마워”
유선의 것인지, 정민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물 줄기들이 엉킨 채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기운이 전부 빠진 유선은 말없이 미소만 짓다가
피곤과 졸음을 못 이기고 눈을 감았다.
정민은 그런 아내의 얼굴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내 머리 옆에 놓인 분홍빛 포대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꿈같은 순간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자신에게도 이 기적이 허락된다는 것이.
가슴이 떨리고, 다시 눈물이 맹렬히 차올랐다.
겹겹이 싸여있는 분홍빛 포대기 안에 빠알간 핏덩이가 두 눈을 감은 채 색색거리고 있었다.
알맞게 부풀어 오른 분홍빛 두 볼 사이로 앙증맞은 코가 살짝 벌렁거리자
정민은 저도 모르게 “오구오구” 라는 소리가 나왔다.
좋아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울음이 터져 나왔다.
“ 내 딸이다. 내 딸...내 딸이라고..”
아가를 품에 안고 제 얼굴을 부비는 정민 곁으로 산파가 다가왔다.
“ 애 아부지,, 잠시 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산파의 얼굴은 살짝 긴장되어 보였다.
정민은 고개를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포대기를 안은 채 산파와 함께 방을 나왔다.
방 밖에는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그대로 서 있었다.
처음으로 그가 초조해 보였다.
정민은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아가가 들어있는 분홍 포대기를 그에게 살짝 내밀었다.
그러자, 사내는 정민 가까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포대기를 넘겨받았다.
숨 쉬는 것도 멈추고, 그의 온 몸에 퍼진 신경들은
아가를 받치고 있는 두 손으로만 집중된 것 같았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포대기 속 아가를 안은 채 거실 안을 서성였다.
정민은 말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뒷모습이었지만, 남자의 표정이 꽤 따뜻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기묘한 기분과 함께 궁금증이 일었다.
‘ 왜? 당신이?’
“ 아기 아버지, 이보세요?”
“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신지..”
“ 이런 말 저도 조심스러운데... 아가가 울지를 않네.. 엄마 속에서 나오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울음소리를 안내네요. 어쩌죠?”
정민은 마법에서 ‘탁’하고 풀려난 것처럼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침착해졌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거짓 없이 그대로 털어놓았다.
“... 그렇군요.... 아내와 아가만 건강하다면 다른 건 아무 상관없습니다..괜찮아요.”
이 정도의 기적이라도 기적이었다.
말을 못한다고 해도, 아예 태어나지 못한 절망보다는 훨씬 나았다.
“ 아... 그리고...저기..”
“ 왜 또 무슨 문제가 있으세요?”
“ 아니.. 저기.. 그게 아니라... 이걸 뭐 어떻게 말해야 하나... 알고... 참...”
산파는 정민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 편하게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정민의 침착한 태도에 마음을 놓았는지 산파가 입을 열었다.
“ 아니... 기분이 좀 이상해서요.. 내가 이 일을 이십 년 넘게 하고 있는데...
산모 밑에서 아길 꺼낼 때... 기분이 좀 묘해서요....”
산파는 다시 주변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정민의 눈빛이 조금 심각해졌다.
“ 묘하다니... 왜...그런 말씀을...”
“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말할게요. 그게 밑에서 애를 받을 때 사람 형체가 아닌 것 같았어요.. 마치... 물고기 같은 게 안에서 쑤욱 나오는 것 같아서...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지 뭐예요. 근데 귀신같이 그 물고기가 사람처럼 다시 변하드라고...그런데 그럴 수가 없잖아요? 어떻게 사람이 물고기를 낳..”
-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주보고 있던 산파의 얼굴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뒤에는 오른쪽 팔엔 분홍색 포대기를 안고 있는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왼쪽 손에 잡힌 도자기 그릇에선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 아니, 당신 미쳤어!!!!”
놀란 정민을 담담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사내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들어와 치워.”
현관문이 열리고 검은색 양복을 입은 체구가 큰 사내 네 명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선채로 아연실색한 정민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 양복의 입은 사내들은 머리가 깨진 산파를 들쳐 매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주변은 정리됐다.
그 곳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한 정민뿐이었다.
거실 베란다로 건너 보이는 바깥 풍경.
푸르스름한 새벽이 걷히고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한쪽 눈을 가린 남자는 옅게 미소를 띤 채
포대기 속 아가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였다.
“ 잘 왔어...우리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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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족이란 이름의 악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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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족이란 이름의 악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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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래를 삼킨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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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막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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