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이야기
아성의 손이 문에 닿자 강렬한 푸른빛이 안에서 밖으로 쏟아지며 저절로 열렸다.
“ 아... 눈부셔. ”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밝은 빛에 아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 쿵
문이 닫히고, 주변의 푸른빛에 좀 익숙해진 아성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기다란 복도 한 가운데 긴 두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발목까지 덮은 긴 옷을 몸에 걸친 그는, 마치 중세의 수도사 같았다.
얼굴의 절반이 가려져 있었으나 아성은 곧바로 그를 알아보았다.
“ 어? 삼.......삼촌! ”
그는 다른 사람에게 대하는 것과 달리 아성에게는 언제나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일주일에 한 번은 아성의 집에 들러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 왜 삼촌이 웃지 않지? 인사도 하지 않고... 무섭게 그냥 보고만 있잖아.’
아성은 용기를 내서, 남자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푸른빛을 발하는 타일을 하나하나 밟을 때마다 물이 찰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 차알랑 찰랑, 뚜벅뚜벅, 차알랑 찰랑, 뚜벅뚜벅...
널따란 광장을 연상시키는 방 한 가운데에는 가죽 소파가 놓여 있다.
매끄러운 갈색 가죽으로 감싸진 이 소파 위에는
몸 전체를 검은 천으로 둘러싼 한 노인이 앉아 있다.
200살은 넘어 보이는 노인의 깊은 주름에선 죽음의 냄새가 짙게 배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저승의 사자가 목숨 줄을 끊으러 올 것만 같았다.
짙은 회색빛으로 변해버린 노인의 눈동자가 한 곳만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소녀.
고래를 삼킨 아이
바로, 아성이었다.
노인의 오른쪽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아성의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성의 눈높이에 맞춘 그는 한동안 아성을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아성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언제나 자신에게 따뜻하게 웃어주며
< 아성이가 나를 ‘ 삼촌’ 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어 ...>
라고 말한 다정한 남자가 분명했다.
“ 흠흠흠 ..”
뒤쪽에 앉아있던 노인의 기침에 불편한 기색이 그대로 느껴졌다.
남자의 다정한 눈빛은 금세 사라졌다. 대신에, 그는 대단히 딱딱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셨.군.요.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뜻밖이었다.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아성에게 깍듯한 경어체를 쓰는 남자.
아성의 눈이 두려움과 황당함에 가득 차 더없이 커졌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삼촌.... 왜 그래요?... 나 무서워요...”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의 그림자가
하얗게 질려버린 아성의 얼굴 위로 어둡게 드리웠다.
얼굴을 감싼 두건 속에 남자의 눈빛이 흐릿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아성에게 지금부터 일어날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푸른빛 복도 위로 노인의 맨발이 하나씩 닿았다 떨어졌다.
멀리 어둠속에 쌓여 있던 노인의 몸이 점점 불빛에 비쳐 하나씩 드러나고 있었다.
앙상한 팔과 다리.
간신히 달라붙어 있는 살가죽.
그 위로 퍼진 저승꽃.
그는 아성의 얼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멈췄다.
아성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노인의 몸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 때문에 똑바로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노인은 텅 비어있는 눈으로 아성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짙은 회색빛의 동공 위에는 보라색 핏줄이 실타래처럼 퍼져 있었다.
얼굴 중앙의 콧날 윗부분에는 뜯겨나간 것 같은 흉터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오래전 흉터일 텐 데 아주 뚜렷하게 보였다.
아성의 온 몸이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바로 눈앞에 걸어 다니는 시체와 맞닥뜨린 것처럼.
“ 킁킁킁킁..... 아... 하... 아... 하.... 좋아. 좋아.. 그렇지.. 그래.”
노인의 뜨듯한 콧김이 아성의 몸 여기저기에 닿았다.
그는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연신 “ 찾았다.. 찾았어..” 라고 말했다.
“ 이 아이 안에 확실히 고래가 있다.”
뜻을 알 수 없는 노인의 말에, 아성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의 옆모습은 아무런 말이 없다.
노인은 한동안 아성의 몸 이곳저곳을 샅샅이 킁킁거리다
굽었던 허리를 천천히 폈다.
그의 몸에서 낡은 태엽을 감았다 푸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등을 돌리고 원래의 자리로 걸어갔다.
“ 아... 하...”
빳빳하게 서 있던 아성은 물에 녹아버린 설탕조각처럼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노인이 되돌아 걸어가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지만, 아성이 있는 쪽으로 돌아보진 않았다.
노인은 가죽 소파 위로 거의 쓰러지다시피 기대어 앉았다.
그는 바로, 내일 죽는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 시작하지.”
라고 노인의 말이 끝나자, 남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 아직 열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입니다.”
남자는 불편한 기색을 최대한 감추고, 정중히 말했다.
“ 그래서?”
반짝. 처음으로 죽어있던 노인의 눈빛이 파르르 하고 살아났다.
그것은 분노와 비슷했다.
“ 아직 고래와의 합일도 온전치 않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남자의 얼굴은 해석할 수 없는 표정으로 덮여 있었다.
“ 나를 걱정하는 거냐? 아니면 저 아이를 걱정하는 거냐?”
노인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남자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 위험해도 해야 한다. 아니면, 난 열흘도 못 견뎌.
어떤 고래든지 내 안으로 빨.아.들.일.거.다..... 준비해.”
노인의 말이 끝나자, 남자는 고개를 들고 아성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남자가 한 발짝 다가올수록, 아성은 한 발짝 뒷걸음쳤다.
아성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남자는 쓰러진 아성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
방 뒤쪽의 거대한 수족관으로 향했다.
집요하게 따라오던 노인의 시선이 거두어지자,
남자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아성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수족관 안)
거대한 규모의 수족관 안에는 작은 물고기 하나 들어있지 않지만,
신선하고 맑은 바닷물이 언제나 새로 공급되었다.
수온은 천장에 설치된 인공 태양열 장치로 언제나 17도를 유지하고 있다.
수족관 안의 물이 파도치듯 출렁이고 있다.
- 출렁, 출렁, 출렁.
출렁이는 물소리와 거친 숨소리를 배경으로
수족관 안에서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절실하면서도 어려운 스텝이다.
둘 중 하나는 죽고, 나머지 하나는 산다.
아성은 헐떡거리는 노인의 발가벗은 몸 아래에 납작하게 깔려 있었다.
수족관 한쪽 벽에 밀쳐진 아성은 목 윗부분만 물 위에 살짝 나와 있었다.
노인의 격렬한 움직임에 따라 코 까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했다.
노인은 가느다란 팔로 간신히 수족관 벽을 밀며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지만,
매우 위태롭고 불안해 보였다. 노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힘을 주고 밀어붙였다.
아성의 눈은 반쯤 감겼다 뜨기를 반복했고, 온 몸으로 퍼지는 극심한 고통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무언가가 빠르게 아성의 몸에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천천히 소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끙끙대는 노인의 거친 숨소리가 방 안 공기를 채우고,
그는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소녀의 모든 것을 빠르게 흡입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 턱...샥삭삭
울퉁불퉁 튀어나온 등뼈 한 가운데로 도끼날이 내려앉더니 재빠른 속도로
엉덩이 골 아랫부분까지 질주했다.
익숙하고 날랜 작업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목 아래로 두 동강이 났다.
“ 으헉...”
노인은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었고, 큰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목 아래로 갈라진 가슴팍을 멍하게 내려다보다 눈을 뜬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성의 얼굴 위로 검붉은 핏덩어리가 후두둑 떨어졌고,
또 한 번 정신을 잃었다.
핏빛으로 변한 수족관 물 안으로 소녀의 얼굴이 잠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