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막다른 길

여섯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작은 새가 지저귀고, 창문 밖으로 스며들어온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옅어지고 있다.


“흐흡! 엄. 마.”


번쩍 떠진 아성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둘러본다.

아성의 침대, 아성의 책상 위에 꽂힌 책들, 피아노와 인형들...

모든 것들이 익숙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 엄마 !! 엄마!! ”


아성은 더욱 크게 소리 질렀다.


‘ 내가 지금 말을 한다. 내 목소리다. 꿈인데, 꿈이 아니다.’


아성의 몸은 침대 위에 있는데,

머릿속은 꿈 속, 바다 한 가운데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성은 한기가 느껴져 몸이 저절로 덜덜 떨렸다.

문이 부서질 듯 ‘쾅’하고 열렸다.


“ 아성아... 아성아.. 너 혹시... 엄마 부른 거야? 우리 딸이 마,말을 하다니.”


정신없이 들어온 유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반쯤 열려진 문 틈 사이로 정민이 놀라 서 있었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아성이 입을 열었다.


“ 응, 엄마.근데... 고래가 .. 내 안으로 들어왔어요.”

아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선의 눈엔 뜨거운 눈물이 차올라 흘러 내렸고,

문 밖에 서 있던 정민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민의 입은 굳게 다문 채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 흐흐흐흑... 우리 아성이, 내 딸... 흐흐흐흑... ”


유선은 오열하며 품 안에 아성을 세게 안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힘주어 딸을 안고,

유선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통곡했다.

“ 엄마 괜찮아... 괜찮아...울지마...”


어른스럽게 아성은 작은 손으로 유선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

왜 괜찮아야하는지

어떻게 자신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아성은 울고 있는 유선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이 수두룩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유선의 흐느낌이 잦아들었다.

문 밖에 주저 앉아있던 정민도 어느 세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아성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유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푹 가라앉아 있었다.


“ 당신... 택시 좀 불러줘요.”


그 소리에 감전이라도 된 듯 정민이 휘청했다.

“ 당신... 정말 ... 꼭 그렇게 해야겠어? 우연일 수도 있잖아. 기적처럼...

우리 아성이가 갑자기 말을 하게 된 건 고래 때문이 아니..”

아성을 향해 있던 유선이 고개를 돌려 정민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잠시 후, 정민은 체념한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성은 자신의 얼굴을 감싼 유선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며 물었다.

“ 엄마... 우리 어디가?”

“ 응... 아성아... 아주 좋은 곳으로 가..”

“ 어디?”

“ 가보면 알게 돼. 우리 아성이가 고래 이야기를 하면 그곳으로 가기로 약속했었거든.

아주 옛날부터.”


고개를 끄덕이는 아성을 바라보는 유선의 얼굴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아빠는 같이 안가?”


택시 창문 밖에 서 있는 정민을 바라보며 아성이 물었다.


“ 응, 아성이랑 엄마만 갈 거야. 아빠는 집에 있고...”

“ 왜? 아빠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눈물과 미소가 묘하게 얽힌 표정을 한 유선은 대답 없이 딸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기사님,,, 서울 수양동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아성은 고개를 돌려 정민이 서 있는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밖에서 정민도 손을 올려 아성에게 흔들었다.


정민은.... 울고 있었다.

아성이 열린 창문 틈으로 “ 아빠 울지마” 라고 소리쳤다.

정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 알겠어. 아성아...이따 보자. ”

라고 말했다. 눈물을 연신 흘리면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말은 거짓말인 것 같았다.

아성은 차문을 갑자기 열고, 뛰어 내렸다.

택시기사, 유선, 정민 모두 놀랐다.

차에서 내린 아성은 정민의 품에 폭 하고 안겼다.

정민은 무릎을 꿇고 아성을 안은 채로


“ 사랑한다. 내 딸...”


라고 먹먹한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다.

그것은 절대로 다시 볼 수 없는 마지막 인사 같았다.

아성이 말했다.


“ 아빠가 아픈 게 느껴져. 우리 지금 .. 헤어지는 거구나.”

정민은 놀란 눈으로 품에 안긴 딸을 쳐다보았다.

그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얬다.


차는 멀어지고 정민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익숙한 시장 길을 지나치고

택시는 길쭉한 도로를 오랫동안 달렸다.


한적한 도로를 벗어나니 차들이 꽉 찬 도로 여러 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리고 미로처럼 얽힌 길을 택시 기사는 익숙하게 헤쳐 나갔다.


택시는 유선이 말한 수양동 어딘가에 멈췄다.

집도, 집을 감싸고 있는 담도 고대의 성벽처럼 높았다.

모든 것이 솟아올라 하늘까지 닿을 듯한 동네였다.

돌로 감싸진 높다란 장벽 한 가운데 검정 철문이 유선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끝없이 펼쳐진 녹색 잔디 위에 아성의 발이 닿았다.


“푹신해.”


아성은 혼자만 들릴만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때,

검은색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다가왔고, 유선과 아성을 차에 태웠다.

그들은 유선에게 깍듯하게 인사했고,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성은 유선의 손을 꽉 잡았고, 유선은 작게 “괜찮아..” 라고 속삭였다.

멋들어지게 조경한 정원을 지나 차는 분수대 앞의 저택 입구에 멈췄다.


두 개의 저택이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하나는 회색 돌 벽으로 촘촘히 둘러싸인 건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고풍스럽게 지어진 한식 형태의 건물이었다.

아성이 궁금한 표정으로 회색 돌벽 쪽을 가리키자

유선이 “저건.. 교회야.” 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계단 몇 개를 올라 한식 형태의 건물로 들어갔다.

검은색 제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줄지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이 걷는 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을 취했다.

아성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천장, 기둥, 창문 곳곳에 붙어있는 카메라 렌즈가 그런 아성의 얼굴을 담았다.

기다란 복도와 몇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다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엘리베이터 안에 올라탔다.


- 딩, 열렸습니다.


맑고 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은색 문이 옆으로 활짝 열렸다.

엘리베이터 밖에는 다시 두 명의 남자가 양 옆으로 서 있었다.

그들도 유선에게 반듯하게 인사했다.


마찬가지로 검은색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유선과 아성이 따랐다.

앞만 보고 걷는 유성과 달리 아성의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른들의 걸음을 맞추느라 거의 뛰다시피 걸어야 해서

자세히 살펴볼 순 없었다.


앞서가던 두 명의 남자들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회색 문 앞에 멈췄다.

그 들 중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무전기에 대고 작게 중얼거리자, 육중한 크기의 문이 가볍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르륵 밀렸다.


아성의 손을 잡고 유선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사방은 우주의 어둠처럼 완벽한 암흑이었다.

빛이라곤 없어서 유선도, 아성도 보이지 않았다.

“ 엄마? 너무 어두워!”

아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면으로 추측되는 방향에서 가느다란 푸른 빛이 새어나왔다.


“아. 아파.”


아성을 잡은 유선의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 아,, 미안.... 엄마가 미안해...아성아...”


유선의 손이 갑자기 땀으로 축축히 젖어들고, 몸이 조금씩 떨렸다.

가느다랗게 새어나온 푸른 빛이 점점 길어지더니 위로 그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다시 아래로

그어졌다. 암흑 속에서 푸른빛은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은 네모난 문의 형태였다.

안에서 밖으로 새어 나오는 강렬한 빛은 마치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푸른빛이 새어나오는 문 앞까지 다다랐을 때,

유선은 조용히 잡고 있는 아성의 손을 풀었다.

“엄마?”

아성은 고개를 들어 유선을 바라보았다.

파란 불빛이 유선의 하얀 얼굴 위에 일렁거리고 있었다.


“ 엄마, 나.. 혼자 들어가야 하는 거구나?”


유선은 아성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유선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보이진 않지만, 유선의 뒤에는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을 것이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아성에게 푸른빛의 문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곳은 막다른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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